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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가 살 거니 나가라” 전세갱신 거부 … 대법 “집주인이 실거주 증명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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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실거주 여부를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4년 전 A씨는 자신이 소유한 서초구의 한 아파트를 전세로 내놨다. 자녀들이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어 A씨는 제주에 살고 있었고, 남편은 일 때문에 서울의 또 다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임차인으로 B씨 부부가 들어왔다. 전세금 6억3000만원에 2년 계약이었다. 계약 만료 석 달 전 B씨 부부는 계약 갱신을 요구했으나, A씨는 “가족이 들어와 같이 살려고 한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B씨 부부는 나가지 않았고 이에 A씨가 소송을 냈다.

2021년 6월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이 원칙 때문에 사실상 임대차 기간은 2+2년으로 늘어났다. 다만 임대인(직계존속·비속을 포함)이 실거주하려는 경우엔 예외적으로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재판에선 A씨에게 실제 실거주 의사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임차인 B씨 부부는 “A씨가 실거주 요건 조항을 악용해 거짓으로 부당하게 갱신 거절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편·자녀와 함께 거주할 것이라던 A씨는 소송 제기 후엔 아픈 노부모가 살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집주인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거나 매도하려 하는 등 실거주 계획과 명백하게 모순되는 행위를 한 사정을 찾을 수 없는 이상 실거주 계획을 이유로 한 갱신 거절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같은 법원 2심 재판부 역시 1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난 7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실거주 사유로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A씨가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인정하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원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의 주거 상황, 가족의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적 환경, 실거주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등을 살펴본 결과 A씨의 실거주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앞서 하급심에서 ‘의심스럽긴 해도 명백한 모순이 없으면 임대인 승’이라고 본 것과 달리 대법원은 ‘의심스러워 통상적 수긍에 이르지 못하면 임차인 승’이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이날 판결에 대해 “임대인의 실거주 의사를 어떻게 판단할지를 두고 하급심에서 의견이 엇갈려 왔다”며 “이번 판결은 실거주 의사 증명 책임의 소재와 그 의사를 판단하는 방법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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