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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도 녹인 겨울바다 맨발걷기…부산 ‘어싱’성지로 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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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한파가 몰아친 지난 21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시민 수십명이 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맨발로 백사장을 걷고 있다. 김민주 기자

한파가 몰아친 지난 21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시민 수십명이 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맨발로 백사장을 걷고 있다. 김민주 기자

“약으로도 치료가 안 될 만큼 심하던 우울증세가 싹 사라졌어요.”

지난 21일 오후 1시40분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을 걷던 추모(60·여)씨는 “4개월째 매일같이 바다에 나와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시각 해변 기온은 영하 1도, 체감온도는 영하 6도까지 떨어졌다. 해변 끝 101층 빌딩인 엘시티에서 휘돌아 나온 빌딩풍이 해변 1.6㎞ 전체 구간을 할퀴는 탓에 더욱 춥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추씨 등 수십명이 맨발로 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맨발 걷기, 이른바 어싱(Earthing·접지) 열풍이 전국에서 불고 있는 가운데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 한파 속에도 ‘수퍼어싱’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 운동 효과 이외에도 땅과 접지를 통해 피로 해소와 잔병 치료 등 효험을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이날 해운대해수욕장을 거니는 이들은 모두 백사장과 바다 경계 지점에서 찰랑대는 바닷물을 맨발로 헤치고 다녔다. 해운대구 주민 이광영(65)씨는 “지난해 상반기 무렵부터 이곳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자주 나오는데, 통증 완화 등 효과가 꽤 있는 듯하다”고 했다. 서구 서대신동에서 남편과 함께 온 황모(63·여)씨는 “불면 증세가 심해 매일 처방 수면제를 반알씩 먹는다. 그래도 잠을 못 자 몽롱한 날이 많았다”며 “바닷가를 맨발로 걷는 날엔 불안과 불면 증세가 크게 완화돼 약을 먹지 않고도 푹 잘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취재기자도 호기심에 맨발 걷기를 체험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자 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정강이를 때렸다. 하지만 맨발에 닿는 젖은 모래 감촉은 부드러웠고, 바닷물도 생각만큼 차갑지 않았다. 엘시티 앞에서 시작해 반대편 끝 웨스틴조선 호텔까지 1.6㎞를 걸어가는 31분 동안 새파란 겨울바다빛에 마음이 안정되고, 몸엔 온기가 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한성호 동아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맨발 걷기의 의학적 효과가 연구 등을 통해 증명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이 심신 안정 등 효과를 체감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다만 발에 상처가 있거나, 당뇨 등 지병으로 감각이 둔한 사람은 세균 감염·동상 등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맨발 걷기는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싱을 즐기는 맨발족이 해운대해수욕장에 몰리면서 주변 상권엔 기대감이 싹튼다. 해변 맞은편 구남로광장에 식당과 카페 등 상가가 밀집했고, 걸어서 3분 거리에는 전통시장인 해운대시장이 있다. 장영국 해운대시장 상인회장은 “어싱은 7, 8월 성수기 이외에도 방문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사계절 콘텐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운대구도 관련 조례부터 정비하며 맨발족 모시기에 나섰다. 해운대구는 지난 12일부터 ‘해변 낚시 금지’ 등 내용이 담긴 해수욕장 관리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바늘 등 낚시도구가 맨발 걷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세족장을 확충하는 등 어싱 관련 편의시설을 확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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