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께서 병아리 10마리를 주셨다. 잘 키워 몸보신하라는 것이었다.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고 부모님 몰래 쌀까지 퍼다 먹이로 주며 정성을 쏟으니 병아리도 잘 자랐다. 닭장수에게 판 2500원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닭을 사고, 또 팔면서 이리농고 시절에 씨닭(종계) 5000마리, 돼지 700두를 기르는 농장주가 되었다.’
국내 최대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을 품게 된 하림그룹 김홍국(66) 회장이 『나의 사업 이야기』에서 밝힌 성공 스토리다. 25일 전북 익산시에 따르면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18일 HMM 경영권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익산에 본사를 둔 하림그룹을 선정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본계약이 마무리되면 하림그룹(자산 17조910억원)은 현재 27위인 재계 순위가 13위로 뛰어오른다. 자산 규모는 HMM(25조8000억원)을 더해 약 43조원으로 불어난다.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를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한 김 회장이 50여 년 만에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 등 세계 1, 2위 해운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초대형 국적선사 최고 경영자(CEO)가 되는 셈이다. HMM을 인수하면 세계 1위 곡물회사이자 대형 해운업체인 ‘카길’처럼 키우는 게 그의 목표다.
김 회장은 평소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 정신을 강조해 왔다. 2014년 11월 17일 프랑스 파리 ‘퐁텐블로 오세나’ 경매소에서 열린 나폴레옹 1세 이각(二角) 모자(바이콘) 경매에서 188만4000유로(당시 약 26억원)에 낙찰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각모는 나폴레옹이 1800년 6월 오스트리아 7만 군대를 상대로 역전에 성공한 이탈리아 마렝고 전투에서 썼던 모자다. 현재 경기 성남에 있는 NS홈쇼핑 ‘나폴레옹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김 회장은 1978년 익산에 황등농장을 세우며 양계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각종 M&A(기업 인수·합병)를 통해 회사 몸집을 키웠다. 하림그룹은 전북에만 17개 계열사, 55개 사업장을 둔 전북 경제의 효자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본사가 위치한 익산에선 절대적 위상을 차지한다. 익산시에 따르면 망성면에 있는 ㈜하림 닭고기 가공 단지(15만5843㎡)에선 연간 도계(잡은 닭고기) 1억9506만 마리를 생산한다. 직원만 2383명에 달한다.
㈜하림산업은 2018~2021년 5100억원을 투자해 함열읍 제4산업단지 12만3429㎡에 소스·즉석밥·라면 등을 만드는 식품공장·물류센터 등을 지었다. 이곳에선 670명이 일한다. 왕궁면 국가식품클러스터엔 ㈜하림푸드가 2500억원을 들여 5만3614㎡ 규모의 냉동식품 가공 공장을 짓는다. 내년 착공해 200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전북에선 하림의 HMM 인수 소식에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며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익산시 관계자는 “전북에 하나뿐인 대기업이기 때문에 축하할 일이고, 더 잘되길 응원하고 있다”며 “회사가 잘되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반면 일각에선 “무늬만 전북 기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그동안 (하림그룹이) 지역에 기여한 게 별로 없다”며 “HMM을 인수해 알차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으로서 짊어질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좀 더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