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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떠난 남편 생각날 때마다 모았다"…소방관 울린 편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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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경기 광주소방서에 보낸 음료와 간식들. 경기 광주소방서

A씨가 경기 광주소방서에 보낸 음료와 간식들. 경기 광주소방서

경기 광주소방서로 지난 15일 오후 익명으로 특별한 선물이 배달됐다. 선물 박스엔 와플 등 간식과 음료 50잔과 함께 흰 봉투가 들어있었다. 봉투에는 현금 200만원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익명의 기부자는 편지에서 자신을 “예쁜 딸아이의 엄마이자 1년 전 오늘, 구조대원님들께서 구조해주신 한 남자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그는 “춥게 눈 내리던 그 날. 추위도 잊고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빨리 구조하려고 노력하고, 구조 후 구급차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같이 뛰며 조금이라도 더 응급조치해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남편 생각날 때마다 모았다” 소방서에 기부 

기부자는 “일 년이 지난 오늘은 저의 예쁜 딸의 생일이자 남편의 기일”이라고 밝히며 “이날이 오는 게 힘들고 두렵고 무서웠지만 조금이나마 좋아할 일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남편과 커피 한잔하고 싶을 때, 남편에게 옷을 사주고 싶을 때,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을 때 조금씩 모았다”고 함께 보낸 200만원에 관해 설명했다.

A씨가 쓴 편지. 경기 광주소방서

A씨가 쓴 편지. 경기 광주소방서

그는 “아이에게 아빠의 이름으로 무언가 사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날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는 게 남편도 ‘우리 아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며 “그날 이후 구급차를 보면 숨 막히게 힘들었는데 이런 생각(소방에 기부)을 하니 구급차를 보는 게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이어 “감사한 마음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부담 없이 받아주시고 꼭 구조대원분들께서 필요한 곳에 사용해 달라”며 소방관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광주소방서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신고한 뒤 즉시 기부자를 찾아 나섰다. 간식과 음료는 그렇다 쳐도 현금 200만원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어긋났다.
음료 배달 업체를 통해 파악한 익명 기부자의 정체는 30대 여성 A씨였다. A씨의 남편 B씨는 중장비 기사였다. 평소처럼 출근해 일하던 B씨는 딸의 생일날인 2022년 12월 15일 현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평소 앓던 지병이 문제였다. 즉시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하고 계속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B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돈 돌려주자 “남편 이름으로 불우이웃 위해 기부”

광주소방서 관계자들은 돈을 돌려주려고 직접 A씨를 찾았다. A씨는 “당시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다”며 재차 고개만 숙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돌려받을 수 없다”며 “이미 전달한 돈이니 받지 않겠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의 거듭된 설득에 A씨는“남편 이름으로 불우이웃을 돕는데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방서 측은 대신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A씨의 딸에게 학용품을 선물했다.
광주소방서 관계자는 “이송 환자 중에 사망자가 나오면 유가족의 원망받는 일이 많은데 ‘고마웠다’는 A씨의 편지에 소방서 직원들 모두 가슴이 뭉클했다”며 “A씨와 A씨의 딸이 행복하게 잘 지내길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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