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균전 전범자 후예들" 난데없이 '반일몰이' 나선 北의 속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당국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 30분쯤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하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 당국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 30분쯤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내 방사능 오염수의 내년 4차 방류 계획을 발표한 일본을 향해 "세균전 전범자 후예"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간 한·미 때리기에 골몰하던 북한이 일본을 표적으로 삼은 건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위협에 대응해 한·미·일 협력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의도로 보인다. 또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국제여론이 적지 않은 점 등을 활용, '반일몰이'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논평에서 "얼마 전 일본 당국은 핵 오염수의 4차 해양 방출을 다음 해 2월 하순에 시작한다고 발표했다"며 "엄중한 건 (일본이) 지금까지 형식상으로나마 진행해 온 트리튬(삼중수소) 농도 확인 공정을 (4차 방류에선) 거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이 핵오염수를 갖고 전 인류의 생명 안전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면서다.

이는 내년 4차 방류에선 방류 직전 삼중수소 농도의 측정을 생략하겠다는 일본 당국의 계획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전력은 앞선 3차 방류까지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처리 이후에도 걸러지지 않은 트리튬을 바닷물로 희석한 뒤 오염수 표본의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는 절차를 진행해왔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지난 8월 24일 도쿄전력이 공개한 해수 배관에서 최초로 오염수를 채취하는 모습. 도쿄전력 홈페이지,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지난 8월 24일 도쿄전력이 공개한 해수 배관에서 최초로 오염수를 채취하는 모습. 도쿄전력 홈페이지, 연합뉴스

특히 통신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생화학무기를 연구·생산했다고 주장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731부대, 516부대와 같은 비밀 세균전 부대들을 조작하고 각종 생화학 무기의 연구와 생산을 발광적으로 다그쳤다"면서다. 또 통신은 "세균전 전범자들의 후예들이 오늘은 각종 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 핵 오염수로 인류 공동의 재부인 바다를 못 쓰게 만들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 안전에 엄중한 위협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이처럼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걸고 넘어진 건 한·미·일 안보 협력의 한 축을 건드리면서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중국, 러시아 등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8월 자신들의 군사정찰위성 발사(2차)로 인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맥락에 맞지 않게 일본의 원전 오염수 문제를 꺼내 들었다. 당시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핵 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주권 국가의 권리라는 주장을 펼치다가 갑자기 "대량의 방사성이 포함된 오염수 방류 결정은 인류와 환경에 대한 악랄한 범죄"라며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비난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기존 한·미 차원의 북핵 공조에 일본까지 가세하면서 북한이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커졌을 것"이라며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약한고리인 오염수 문제를 부각시켜 자신들에게 집중된 비난 여론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조선우표사가 지난 21일 공개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의 발사 성공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의 모습.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북한 조선우표사가 지난 21일 공개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의 발사 성공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의 모습.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이처럼 북한이 각종 담화와 논평을 통해 연말 비난전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이번 주 올해 성과를 결산하고 내년도 국정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소집될 전망이다.

회의에선 정찰위성, 고체연료 ICBM 등 국방 분야의 성과를 평가하고, 4년 차에 들어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각 분야별 전략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북한이 공언했던 정찰위성 추가발사 계획 및 아직 미진한 ICBM 기술 관련 과제 등 한반도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제까지 포함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편 북한이 영변에서 경수로를 시운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표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 대표부 명의로 밝힌 입장에서 "안전을 포함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밝혔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다.

북한 영변 핵시설 현황. 연합뉴스

북한 영변 핵시설 현황. 연합뉴스

앞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막한 정기 이사회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이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에서 실험용 경수로(LWR)의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중순 이후 북한 영변의 더 큰 경수로에서 활동이 증가했으며, 냉각기에선 다량의 물이 배출되는 것을 관측했다"는 구체적인 근거까지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도 이날 "정부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 핵시설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북한은 안보리 결의에 위반해 핵물질 생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겠다고 밝히고 탄도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등 한반도와 전세계 평화·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