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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에 대뜸 "나 픽업 올거지"…마약사범 잡은 택시기사 '기지'

중앙일보

입력

마약 범죄를 의심한 택시 기사의 기지와 경찰의 신속한 대응으로 신고 접수 10여분 만에 중국인 마약사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23일 경기남부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7시 8분 장난 전화인 듯한 112 신고 1건이 접수됐다.

전화를 건 40대 택시 기사 A씨는 대뜸 "응. 나 픽업하러 올 거지?"라고 말을 꺼낸 뒤 "너희 회사는 수원역에 있잖아"라고 말했다.

당시 신고접수를 한 상황1팀 이준영 경사는 이상함을 느끼고 "혹시 위급한 상황에 있느냐. '응, 아니'로 대답해 달라"고 했다. 이에 A씨는 "응"이라고 답했다.

이 경사는 A씨가 말한 '픽업'을 경찰관 출동 요청으로, '수원역'을 수원역 앞에 있는 매산지구대로 이해했다. 그는 곧바로 '코드0'(CODE 0·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을 발령하고, '공청'(모든 요원이 신고접수 상황을 공동으로 청취하는 것)을 실시했다.

A씨는 차량 번호를 얘기하고는 '드럭'(drug·약물)이라는 표현을 쓰며 마약사범으로 의심되는 손님이 택시에 탔다고 알리기도 했다.

이 경사는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억지로 범인을 잡을 필요는 없다. 위급 상황이 생기면 대처하려고 하지 말고 범인을 그대로 내려줘라. 그다음은 우리 경찰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택시 색상을 과일 색으로 말해달라", "(범인의) 옷 색깔을 날씨에 비유해 답해달라"고 대화를 이어갔다. 정차 전에는 비상등을 켜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택시를 몰아 수원역 앞 매산지구대 쪽으로 가 정차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들은 오후 7시 24분 중국 국적의 30대 마약사범 B씨를 즉시 검거했다. 최초 신고 접수 후 단 16분 만이었다.

당시 B씨는 필로폰 0.6g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으로 마약을 구매해 '던지기'(특정 장소에 물건을 놓으면 찾아가는 방식)로 수령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당초 수원역에서 택시를 탄 B씨가 시흥의 한 다세대 주택으로 가자고 해서 데려다줬다. 그가 '잠시만 기다려라'라고 말한 뒤 우편함에서 물건만 쏙 빼내 다시 택시에 탑승해 수원역에 가자고 하더라"라며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던 마약사범들의 '던지기' 수법이 의심돼 112에 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기성 경기남부경찰청 112 관리팀장은 "이번 사건에서 택시 기사의 기지 발휘, 신고접수 요원의 철저한 대응, 지구대 경찰관들의 신속한 대처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며 "경기남부경찰112상황실은 신고인의 말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B씨를 붙잡아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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