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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첫 눈’의 역주행…‘눈꽃 연금’ 시즌송에 신곡은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그룹 엑소의 겨울 스페셜 앨범 '12월의 기적' 앨범 커버. 수록곡 '첫 눈'은 올해 처음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 1위를 기록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그룹 엑소의 겨울 스페셜 앨범 '12월의 기적' 앨범 커버. 수록곡 '첫 눈'은 올해 처음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 1위를 기록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10년 전 나온 노래가 음원 차트 정상을 찍었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가 데뷔 2년 차 때 낸 곡 ‘첫 눈’이 역주행의 주인공이다. 2013년 ‘으르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들은 그해 12월 팬들을 위한 겨울 스페셜 앨범 ‘12월의 기적’을 발매했다. 타이틀 곡도 아닌 5번 트랙 ‘첫 눈’은 10년이 흐른 지금, 겨울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고 흥얼거리는 대표적인 시즌송으로 자리 잡았다.

‘첫 눈’은 11월 중순부터 멜론·지니·플로 등 주요 음원 차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날이 추워지고 크리스마스에 가까워지면서 차츰 순위가 오르더니 지난 20일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의 ‘톱100’과 일간 차트에서 각각 1위를 기록했다. 엑소가 이 곡으로 1위에 오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8일에는 KBS ‘뮤직뱅크’에서 쟁쟁한 신곡들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해외에서는 고전 캐럴들이 시즌송의 저력을 발휘했다. 1958년에 발표한 브렌다 리의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Rocking Around The Christmas Tree)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9일자에 이어 16일자까지, 2주 연속 1위를 지켰다. 곡이 세상에 나온 지 65년 만에 거둔 성과다. 1944년생인 브렌다 리는 이번 기록을 통해 역대 최고령 1위 가수가 됐다.
23일자 ‘핫100’ 1위는 머라이어 캐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스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이어받았다. 1994년 발매돼 3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은 대표적인 캐럴이다. 영국의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는 남성 듀오 왬(Wham!)이 1984년 발표한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가 지난 8일부터 2주 연속 정상에 올랐다.

브렌다 리가 1958년 발표한 캐럴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는 6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1위에 올랐다. 유튜브 캡처

브렌다 리가 1958년 발표한 캐럴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는 6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1위에 올랐다. 유튜브 캡처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래된 곡들이 주목을 받는 데는 노래를 듣는 방식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캐럴과 같은 시즌송은 개개인의 추억, 향수와 많이 연관돼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익숙해야 한다”면서 “요즘엔 노래를 음원으로 듣기 때문에 옛날에 나온 명곡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 동시대에 나온 신곡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발매된 곡들 역시 모두 경쟁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라고 짚었다.

또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틱톡, 릴스 배경음악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과거 명곡들이 꾸준히 노출되다 보니 캐럴 시장에서 신곡이 갖는 강점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첫 눈’은 노래의 속도를 빨리 감기 하듯 배속한 ‘스페드 업(Sped Up)’ 댄스 챌린지가 틱톡, 릴스 등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음원 성과로 이어지게 됐다. 여든을 앞둔 브랜다 리 조차도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의 뮤직비디오를 새로 제작해 선보였고, 틱톡에 관련 기념 영상을 다양하게 만들어 공개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줄곧 음원 차트 2위까지 오르곤 했던 노래가 올해 처음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 됐다.

“365일 연중무휴 K팝 업계”…주춤한 국내 캐럴 신보

오래된 캐럴이 강세인 상황에서 ‘눈꽃 연금’으로 불리는 겨울 시즌송은 신곡 흥행이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특히 국내의 경우, 신곡 발표조차 부진하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시아의 ‘스노우맨’(Snowman·2022) 등 꾸준히 신곡 발표가 있었던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2019~20년 쯤부터 겨울 시즌송 발매가 주춤해졌다. ‘머스트 해브 러브’(Must Have Love·2006, 브라운아이드걸스·SG워너비), ‘크리스마스니까’(2012, 성시경·박효신·이석훈·서인국·빅스), ‘겨울 고백’(2013, 성시경·박효신·서인국·빅스·여동생)과 같은 메가 히트곡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소비되는 겨울 시즌송은 가요보다 팝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2022년 12월 한 달 동안 써클차트에서 400위권 내에 들었던 겨울 시즌송은 총 51곡으로, 4년 전인 2018년 12월보다 29곡 증가했다. 하지만 국내 가요의 비중은 55%에서 51%로 오히려 낮아졌고, 그 공간을 팝이 메꿨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과거에는 활동 비수기인 12월에 팬 서비스 목적으로 겨울 시즌송을 발매했다면, 지금은 K팝 시장이 글로벌 위주이기 때문에 365일 돌아간다”면서 “제작자는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캐럴 음반보다는 해외 음원 발매 등 다른 작업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남녀노소가 함께 듣는 캐럴이 점점 나오지 않는 상황은 연말 내수시장 활성화 차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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