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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가능인구 감소 위기 한국, 이민·출산 적극 장려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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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호 06면

빈곤 퇴치 앞장 노벨경제학상 부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왼쪽), 에스테르 뒤플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22일 서울 PJ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왼쪽), 에스테르 뒤플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22일 서울 PJ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원하면 흥청망청 쓸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내국인에게 경제적 손해를 안길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대다수의 시민과 경제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왔다. 수차례의 연구결과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음에도 한 번 굳어진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20년간 케냐, 인도 등지에서 기본소득, 교육, 의료서비스 등을 연구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Abhijit Banerjee),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의학적 실험법인 무작위 통제 실험법을 개발경제학에 도입해 기본소득 지급이 근로의욕을 오히려 높이고, 이주의 문턱을 낮춰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롭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사회정책에 획기적 아이디어를 제시한 두 교수는 2019년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사진)으로 이름을 알렸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중앙SUNDAY는 지난 22일 한국을 찾은 두 교수를 만났다. 사제지간의 공동연구자이자 부부인 두 사람은 “잘못된 통념이 세상을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다 투명한 진실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할 때”라며 “비관론으로 세계가 뒤덮인 지금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적기”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선 “유례없는 저출산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큰 위기”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된 극적인 성공을 맛본 나라인 만큼 상황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상식에 반하는 연구로 화제가 됐다.
바네르지·뒤플로 : “처음부터 기존 지식을 돌파하기 위해 연구를 설계한 것은 아니다. 연구를 해보니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실험 데이터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의견 형성 과정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근거가 없는 의견에 쉽게 동요되고, 한번 제시된 의견에는 쉽게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진실과 다른 것들이 고정관념으로 굳어졌다. 기본소득, 이주, 환경에 적용되는 경제적 논리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등한시된 진실을 공론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두 교수의 대표적인 실험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근로의욕이 상실된다는 명제가 꼽힌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지급해도 기존 일자리를 그만두지 않았으며, 오히려 근로의욕이 오른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소득보장 실험에 나선 서울시의 안심소득 사업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론이 나왔다. 지난 20일 서울시는 안심소득 지원가구 중 21.8%의 근로소득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뒤플로: “한국은 꽤 높은 성취를 이룬 나라지만 낮은 출산율은 상당히 두려운 사실이다. 생산가능인구는 여전히 많지만, 이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세금을 낼 사람들도 줄어 노인부양의 문제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한국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민과 출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지구적 갈등도 확산됐다.
바네르지 :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간의 연대관계는 크게 훼손됐다. 특히 백신이 등장한 이후 백신 제조 능력이 있거나 백신을 확보한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과 이를 공유하지 않으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건강이라는 세계적 목표가 무너졌다. 선진국들이 나서 백신 접근권을 공유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선진국은 국제적 연합을 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우리는 결국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존엄성을 강조해왔는데.
뒤플로 : “모든 일의 첫 단추는 존엄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계 곳곳의 갈등은 자신의 존엄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관점을 갖기 시작하면서 점차 커져왔다. 모든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이 박탈당했을 때 시작된단 의미다. 빈곤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존엄성은 무시한 채 단순히 도움만 제공하려고 하면 이들은 도움을 거부하고 분노하게 된다. 노동은 단순한 소득 창출 도구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란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갈등, 국제 정세 등으로 인한 ‘힘든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바네르지 : “상황을 비관할지, 낙관할지 선택해야 한다. 현시대 국가들의 선택에는 너무나 많은 폭력과 냉소주의가 반영되고 있어 사람들이 쉽게 비관에 빠질 수 있다. 지난 20년간 세계의 불평등과 기후위기, 포퓰리즘이 증가한 것은 맞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좋은 일도 일어났다. 점진적인 긍정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이 없으면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다. 한국에 희망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다. 국민의 의지와 정부의 지원이 결합하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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