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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대신 e카드·카톡 일반화, 연하장이 사라져간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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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호 12면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서 시민이 연하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서 시민이 연하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손글씨로 연말연시 인사를 전하는 문화는 이제 낯선 풍경이 됐다. 1970년 바른손카드에서 출발해 한때 국산 카드·편지지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했던 바른컴퍼니는 이제 청첩장을 전문으로 하고, 더 이상 연하장을 제작하지 않는다. 창립 첫해 연하장 판매량이 130만 장에 달할 만큼 뜨거운 인기를 끌었지만 손편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지며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10년 전 아트프린팅 사업을 따로 떼 분사한 비핸즈에서 일부 제작하긴 하지만 매년 100여 종에 달하던 가짓수는 물론 판매량도 뚝 떨어졌다.

박정식 바른컴퍼니 대표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연말에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오랜 관습으로 자리잡아 시장이 공고한 반면 국내 시장은 디지털화와 경기 침체로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며 “이제는 다소 가격대가 있더라도 좋은 품질을 요구하는 ‘문구 마니아층’의 수요를 잡기 위해 소량만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카드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도 크게 줄었다. 제지원료인 수입 펄프값이 급등하며 생산비용도 올라가고 있어서다. 인쇄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제지사인 한국제지·한솔제지·무림페이퍼는 이달 초부터 인쇄용지 가격에 적용하던 할인율을 8%포인트씩 축소하기로 했다. 제지가격은 통상 기준가에서 구매량에 따라 할인율이 적용된다. 기준가는 그대로지만 할인율이 축소되면 실질적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할인율이 7%포인트 줄어든 데 이어 1년 여 만에 다시 축소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드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일명 ‘충무로 인쇄골목’으로 불리는 서울 인현동에서 30여 년 간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김형진(가명·61)씨는 “10년 전만 해도 연말이면 연하장 주문량을 맞추려고 밤샘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단골 거래처마저 점점 주문량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몇 년 새 종잇값도 많이 오르고, 현재 주문량으로는 남는 게 없어 가게 주변만 해도 벌써 서너곳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체 디자인한 카드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유정은(27)씨는 “연말은 물론 생일·결혼식 등 특별한 날도 카카오톡 등으로 e카드를 보내는 게 일반화됐다”며 “국산 업체는 갈수록 줄고, 해외 수입 브랜드는 소비자가가 최소 5000~6000원은 되다 보니 카드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카톡으로 대신한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일, 2024년 갑진년을 맞아 푸른 용을 주제로 한 연하카드·엽서 10종을 발행했다. 올해 발행량은 121만5000장이다. 20년 전 발행량(1370만 장)과 비교했을 때 10분의 1 수준이다. 김상식 우정사업본부 사무관은 “관공서나 기업 수요가 대부분이고 개인 판매량은 적은 것으로 안다”면서 “전년도 판매량을 고려해 새해 발행량을 정하다 보니 팔리지 않으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우체국 앞 풍경도 달라졌다. 박정식 대표는 “일본은 신년에 연하엽서를 주고받는 문화가 정착돼 연말엔 ‘연하장 전용 우체통’을 둘 정도”라며 “업계 1~2위 업체의 경우 연하장 판매량만 연간 1억 장에 달할 정도로 큰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2001년 262억 통이었던 전체 우편물 양은 지난해 144억 통으로 절반 가량 줄었다. 일본우정사업청은 20일 내년 하반기부터 엽서·편지 운송료를 30%가량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년 우편량이 급감한 데 따른 조치로, 일본에서 우편요금이 오르는 것은 3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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