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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민주적인가, 민주의 적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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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인간적인가, 인간의 적인가.’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크리에이터’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AI)이 자체 진화를 거듭하더니 급기야 미국 대도시를 핵폭탄으로 공격하면서 인류와 AI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영화를 소개하는 한 줄의 카피였다. AI의 미래 정체성을 묻는 이 도발적 문구는 그렇잖아도 최근 챗GPT를 비롯해 AI의 급격한 확산에 남모를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는 대중의 심리를 잘 간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AI 전문가들도 하루가 다르게 강력해지는 AI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챗GPT를 만든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이 지난달 전격 해고됐다 5일 만에 다시 복귀한 사건도 AI 규제 필요성을 둘러싼 ‘효과적 가속주의’와 ‘효과적 감속·이타주의’ 논쟁의 부산물이란 게 정설이다. AI에 대한 이 같은 낙관론과 비관·신중론의 극적인 충돌은 ‘의’자 하나 들어갔을 뿐인데 의미가 정반대로 바뀌는 영화 카피 문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실력 없이 사욕만 챙기려는 자인지
내년 총선 앞두고 꼼꼼히 따져봐야

주목할 건 이런 반전이 비단 AI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분야든, 어떤 사람이든 언뜻 보면 다 좋아 보이지만 조금만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긍정과 부정, 진실과 위선이 확연히 갈리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그 편차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바로 한국의 현실 정치다. 실제로 말쑥한 이미지에 전문가적 역량을 갖췄다 해서 국회로 보냈더니 일은 안 하고 줄서기와 사리사욕 챙기기에만 혈안인 자들, 대접받는 걸 당연시하고 으스대며 자신을 뽑아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자들을 얼마나 많이 목도해 왔는가.

우리 주변에도 이런 ‘꼰대’가 얼마나 많은가. 권위주의적·독단적·군사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탓에 50~60대가 돼서도 여전히 20세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 여기에 개인의 권력욕과 인정 욕망이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청년·MZ세대가 기성세대를 꼰대 세대라 부르며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도 듣진 않고, 자기 말만 하며, 자신만 항상 옳다고 믿는 꽉 막힌 모습 때문이지 않겠나.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1위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그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 3위 ‘남우충수(濫竽充數)’다.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악사들 틈에 끼어 있다는 뜻으로, 실력 없는 사람이 재능 있는 체하며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세태를 풍자적으로 비유한 말이다. 이런 자들이 완장을 차거나 배지를 달면 사사로운 이로움에 눈이 멀 수밖에 없는 게 동서고금의 이치다.

이런 자를 골라내는 것, 이런 자는 더이상 국회에 보내지 않는 것, 이런 자는 국가의 주인인 우리 국민의 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이거야말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주권자인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기본명제다. 더 나아가 후보들의 성향과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바탕으로 그가 과연 민주적인가 민주의 적인가, 의회주의적인가 의회주의의 적인가, 유권자들과도 소통 친화적인가 소통의 적인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때다. 이번에도 엉뚱한 사람 뽑아놓고 4년간 실망만 하는 악순환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29년 만에 감격의 통합우승을 차지한 LG 트윈스의 감독·선수·프런트는 이구동성으로 팬들의 성원과 응원 없인 불가능했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프로는 팬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 정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의 지지 없인 사상누각에 불과한 게 정치다. 자신의 영달만 위해 국회 입성을 노리고 의원 배지를 또 하나의 전리품 취급하는 자들을 가려내는 것, 그들이 민주적인지 민주의 적인지 판별해내는 것, 이는 오롯이 우리 유권자들의 몫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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