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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칼럼] 한국·네덜란드 혁신동맹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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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혁신은 인류 발전의 원천으로 편리함을 넘어 경제와 문화, 삶의 근본을 재구성하는 원동력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출현은 의사소통과 정보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신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혁신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4세기 유럽 경제사의 변혁은 네덜란드의 청어 염장법에서 시작됐다. 췌장을 남겨두고 소금에 절이는 이 기법은 청어 보관의 혁신이었으며, 해상무역과 경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원양어업과 조선업, 무역 및 금융업을 활성화시켜 네덜란드를 유럽 최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네덜란드의 혁신 전통은 현대 반도체 장비로 계승됐다. 1984년 설립된 ASML은 전 세계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유일한 공급업체로 반도체 칩의 정밀도와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반도체 미세화를 진전시켜 현대 모든 전자제품과 자동차 혁신의 기반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성취는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창의적인 접근의 산물이다.

한국도 남다른 혁신 DNA를 지니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와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1980년대 반도체 불모지였으나 삼성과 LG가 씨를 뿌리고, 민관이 뚝심으로 밀어붙여 2000년 이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반도체 혁신은 양국이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전략적 자주권을 확보하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네덜란드와 한국은 제한된 국토 면적과 자원, 산업의 다각화, 그리고 무역 강국의 지위 등 여러 공통점을 공유한다. 두 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각각 85%, 15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관문으로, 한국은 아시아와 해양을 잇는 중요한 허브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양국이 개방형 통상 국가로서 세계 수출에서 각각 4위와 6위를 차지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외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ASML 클린룸을 방문한 것은 양국 관계를 ‘반도체 동맹’으로 격상시킨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ASML과 삼성이 1조원을 투입하여 국내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하고, 초미세 노광장비 개발에 협력하기로 한 것도 양국 협력의 중요한 성과다. 이를 통해 한국은 반도체 공급망 우군 확보와 EUV 기술 조기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호혜적 협력이 유망해졌다. 무역협회가 양국 최초로 개최한 비즈니스 포럼에서 양국 기업인은 첨단산업, 에너지, 농식품 비즈니스 성공사례를 공유하며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다. 양국 CEO들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혁신’을 주제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실천방안을 고민했다.

원자력 및 무탄소 에너지 협력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 기술과 네덜란드의 모빌리티 솔루션 결합은 지속가능한 교통 시스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의 K-컬처와 네덜란드의 디자인 예술이 결합되면 문화산업에서 새로운 창조적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양국 간의 다각적인 협력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의 길을 여는 강력한 기반이 될 전망이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방문으로 지난해 맺어진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기업 간 파트너십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양국의 혁신과 도전 DNA, 실용주의가 ‘혁신동맹(Innovation Alliance)’으로 발전한 것이다. 양국은 이제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혁신 주도국으로 도약할 것이다. 네덜란드에서의 첫걸음이 혁신동맹의 위대한 시작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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