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해 법원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 20일 형제육아원 설립 때부터 1992년 8월 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약 32년간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건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한정석 부장판사)는 21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총 203억여원을 지급하라고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른 손해배상금은 1인당 8000만원에서 최대 11억2000만원까지다. 총 청구 액수 203억원 가운데 70%가 넘는 145억8000만원을 인정했다.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강제 수용돼 그 기간에 고통과 또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원고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부랑인 신고단속 보호 등 내무부 훈령으로 원고들을 단속하고 강제 수용을 했지만, 이 훈령은 법률유보·명확성·과잉 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적 훈령이라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강제 수용된 점도 위법한 조치"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고, 그 법리에 따르면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에 대해서는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원고들 상당수가 미성년자였기에 학습권이 침해당한 점,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큰 점, 불법 행위로부터 35년이나 지났지만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선고 결과가 나오자 재판정에 출석한 일부 피해자는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앞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다. 또 수용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진실화해위는 1975∼1988년 수용자 중 657명이 숨진 것으로 봤다.
이번 판결은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다수의 손해배상소송 중 선고가 나온 첫 판결이다. 이에 따라 다른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