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뿐인 강제동원 '2차 소송' 승소 확정…日 반발에 배상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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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변호인단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의 상고심 선고에서 승소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변호인단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의 상고심 선고에서 승소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심선애씨는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1944년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근로정신대에 지원했다. 부모님이 말렸지만 일본 헌병이 “한 번 가기로 하고 안 가면 부모님에게도 큰일이 난다”고 위협했다. 나고야에선 네 평 방에서 여덟 명과 자고 오전 6시 일어나 ‘우리는 처녀정신대’ 노래를 부르며 군수공장까지 걸어가 전쟁에 쓰일 비행기 부품을 다듬는 일을 했다. 월급은 받지 못했다. 일본 노래나 바느질을 배운 게 전부, 기대했던 교육은 받지 못했다.

주석봉씨는 열 아홉살이던 1943년 공무소에서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식량을 배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원에 응했다. 후쿠오카에 있는 제철소에서 하루 8시간씩 쇳물을 녹여 쇠를 추출하는 일을 했다. 월급은 고향으로 보내고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주씨 손에 쥐어지는 돈은 없었고다. 제공되는 식사도 부실해 밭에 있던 감자나 무를 훔쳐먹기도 했다. 외출하려면 ‘징용’이란 글자가 새겨진 공장 관복을 입어야 했고 가족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 도망칠 수도 없었다.

고(故) 심선애씨 등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고(故) 주석봉씨 등 7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이겼다. 소송을 제기한 지 각각 9년 10개월, 10년 9개월만이다. 상고심에서만 각각 5년, 4년 5개월 머물렀다.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피해 당사자는 모두 사망했다.

21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두 건의 소송에서 각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1억5000만원씩을 줘야 한다고 본 원심을 모두 확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이춘식씨 등 다른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사건을 통해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것과 같은 취지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제기한 소송이긴 하지만, 그 전에는 객관적으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웠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일본 기업의 주장은 권리남용이라고 봤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대리한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은 이번에도 소멸시효를 주장하며 상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5년 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는 언제 사라진 것인지를 명시했다. 바로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일이 기준이다. 이에 이보다 이전에 제기된 사건에선 당연히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의 상고심 선고에서 승소한 뒤 포옹하고 있다. [뉴스1]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의 상고심 선고에서 승소한 뒤 포옹하고 있다. [뉴스1]

이날 확정된 소송은 이춘식씨 등이 낸 소송이 쏘아올린 ‘2차 소송’으로 불린다. 이씨 등의 소송은 1·2심에서 모두 진 후 2009년 처음 대법원에 올라왔는데, 2012년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능환 대법관)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이를 기점으로 피해자들은 전국 법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주석봉씨 등이 일본제철 상대로 낸 소송은 2013년 3월 서울중앙지법에, 심선애씨 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은 2014년 2월 광주지법에 낸 것이다.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하급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이어지기도 했는데,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의 소멸 시점’이 논란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중앙지법 민사25단독(부장 박성인)은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아닌2012년 대법원 판결로써 이미 해소됐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날 대법원이 기준을 2018년으로 명확히 함으로써 앞으로 하급심에서 이같은 혼란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법원 확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배상금 지급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문제도 남아있다.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일본 기업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정부는 차라리 우리가 대신 주겠다며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꾸렸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이런 식의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자 이를 법원에 공탁했다가 법원에서 불수리 결정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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