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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남의 속풀이처방

성경을 왜곡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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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거룩한 책이며, 전 세계 베스트셀러이다. 성경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얻고 역경을 이겨낸 수많은 사례가 있으니 성경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일부 사이비 종교인이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강요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성경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다.

첫 번째, 성경은 많이 보아야 경지에 오르며 성경을 다른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성경을 많이 볼수록 내적인 경지가 높아진다면 사이비 교주인 정명석 같은 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는 성경을 2000번을 보았다는데 내적 성장은커녕 신도들의 성과 재물을 착취하는 범죄자가 되었다. 또한 사이비 교주들이 성경 제일주의를 주장하면서 성경 구절을 자기합리화와 자기신격화에 악용하고 있다.

성경은 폭식이 아닌 음미 대상
계시 받았다는 이들 경계해야
이스라엘 선민사상 근거 적어
중동제국의 영향도 많이 받아

자칫하면 사이비로 빠질 위험성

뉴욕 공립도서관에 소장된 구텐베르크 성경. 15세기 중반 출판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올랐다. [사진 위키피디아]

뉴욕 공립도서관에 소장된 구텐베르크 성경. 15세기 중반 출판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올랐다. [사진 위키피디아]

성경은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식 맛을 음미하듯이 조금씩 천천히 묵상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은 음식의 맛은 안 보고 폭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이렇게 무작정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깨우친 것을 하느님이 자기에게 직접 주신 계시라고 여기는 것도 자칫 사이비로 빠질 위험이 크다.

두 번째, 세상사의 모든 답은 성경 안에 있으니 그 외 다른 책은 보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성경이 신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니 세속적인 다른 책들은 보지 말라고 하며 심지어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금기시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고정관념이 강하거나 정서적으로 폐쇄적인 사람들이다. 성경은 지층과도 같다. 신이 단 한 번에 써내려간 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 내용이 중첩적이고 언어적으로도 복잡한 책이다.

신학교 시절 성서학 교수의 말을 빌리면 구약성서를 제대로 보려면 50개의 언어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성경은 대개 번역본이며 개신교의 경우 영어판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원본과는 전혀 다른 내용도 많다. 게다가 구약의 경우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었고 이스라엘 전통문화가 아닌 중동 대제국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가톨릭 신학교에서는 성서학을 구약은 히브리어 원본으로, 신약은 희랍어 원본으로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도록 다년간 가르친다.

이처럼 복잡한 성경을 심리적으로 미성숙하거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 제멋대로 해석하고 가르쳐서 많은 사람을 현혹하고 있다. 사람이 대상을 보고 판단하고 해석할 때는 자신의 지적 수준, 심리적 콤플렉스 등 여러 개인적인 특질에 근거하므로 누구나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해석한다. 그래서 선택적 해석, 즉 자기 생각에 성경 구절을 꿰맞추는 억지를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한 종교인들은 성경 여기저기에서 헌금과 십일조에 대한 구절을 골라내어 헌금이나 십일조를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 심리적 노예로 만들려는 자들은 성경에서 비참한 종말론만을 골라서 이야기한다. 성경 공부를 제대로 안 한 자들일수록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욕망의 충족수단으로 악용한다.

세 번째, 성경은 이스라엘을 선민이라고 증언하며 이스라엘은 종말에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선민의식이란 대개 민족적인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중동의 대제국들 사이에서 경제적·문화적 열등감을 갖고 살던 이스라엘은 민족적 열등감의 해소와 생존을 위해 선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전유물 아니다

이스라엘이 탁월한 민족이 아님은 구약 탈출기와 십계명이 증언하고 있다. 왜 모세가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는 것이라고 강변을 하였을까. 십계명은 왜 만들어졌을까. 당대 이스라엘은 미개한 민족이었다. 물건을 훔치고 여인을 빼앗고 거짓말을 일삼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민족이었다. 그래서 신의 이름으로 계명을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은 선민이 아니며, 더욱이 종말에 세상을 지배한다는 주장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저 구원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발상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은 인류가 어떻게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는지 길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주로 쏘아 올린 보이저호에서 찍은 지구는 광대한 우주에 달랑 떠 있는 작은 빛이었다. 이 작은 곳에서 미생물처럼 사는 것이 인간이고, 이 인간들에게 서로 싸우지 말고 함께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학살하는 행위를 반복음적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런 자들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