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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큰일"…'의령 봉사왕' 할머니, 별세 후 시신 기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남 의령 '봉사왕' 공도연 할머니 생전 모습. 공 할머니는 지난 9월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사진 의령군

경남 의령 '봉사왕' 공도연 할머니 생전 모습. 공 할머니는 지난 9월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사진 의령군

“우리 집은 복판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하는 게 사방에서 다 보이는데 일일이 모두 다 보살피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2002. 11. 12, 봉사일기 중)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서 ‘봉사왕’으로 통했던 공도연(사진) 할머니가 1999년부터 쓴 ‘봉사일기’에 적은 글이다. 공 할머니는 한평생 이웃 돕기에 힘썼다. 고(故) 박정희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정권에서 받은 표창장만 60개가 넘는다. 공 할머니는 지난 9월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뒤늦게 공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들은 “진정한 천사가 하늘나라로 갔다”“군민 대상을 천 번 받아도 모자란다”고 말하며 추모하고 있다고 의령군은 전했다. 자녀가 있는 창원에서 할머니 장례를 치르는 바람에 소식이 늦게 알려졌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봉사…지역 의대 ‘시신 기증’

경남 의령군 '봉사왕' 공도연 할머니 영정사진과 훈장증. 사진 의령군

경남 의령군 '봉사왕' 공도연 할머니 영정사진과 훈장증. 사진 의령군

공 할머니 마지막 봉사는 시신 기증이었다. 자녀들은 생전에 장기기증을 희망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할머니 시신을 경남 진주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시신은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실습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고(故) 박효진 할아버지 시신도 같은 곳에 기증됐다. 군민은 “죽어서도 큰일을 하시는 진정한 어른”이라고 했다.

의령군에 따르면 공 할머니는 17살 때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이웃에게 밥 동냥을 하며 끼니 걱정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10년 넘게 낮에는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를 하고, 밤에는 뜨개질해 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구멍가게를 열고, 논 3305㎡(1000평)을 사 벼를 심었다. 생전 공 할머니는 봉사일기에 “가난 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이라며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적었다. 반백살 봉사 인생의 시작이었다.

가난 설움 알기에…반백살 봉사 이어와

1999년부터 쓴 공도연 할머니의 '봉사일기'. 사진 의령군

1999년부터 쓴 공도연 할머니의 '봉사일기'. 사진 의령군

1999년부터 쓴 공도연 할머니의 '봉사일기'. 사진 의령군

1999년부터 쓴 공도연 할머니의 '봉사일기'. 사진 의령군

그는 형편이 나아진 30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에 나섰다. 새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농한기 소득 증대 사업에 매진했다. 사비를 들여 마을에 간이상수도 설치하고 지붕개량 사업도 했다. 주민들은 고마운 마음에 1976년 당시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세웠다. 의료시설이 없어 주민들이 불편을 겪자, 땅 225㎡를 산 뒤 의령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를 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놨다. 각종 단체에 쌀 등 물품도 기탁했다. 길에서 거지를 만나거나 누군가 궁핍한 이웃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쌈짓돈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챙겨줬다고 한다. 리더십이 탁월했던 공 할머니는 여러 사회 단체장을 맡아 동네 여성에게 한글과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친 것은 지역에서 유명한 일화다.

몸무게 35㎏, 리어카 끌며 나물 팔아 번 돈 ‘기부’

공 할머니 봉사활동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80세이던 2020년에는 몸무게 35kg의 허약한 몸으로 리어카를 끌며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어서 번 돈으로 기부했다. 같은 해 노인의 날(10월 2일) 앞둔 9월 말 사회공헌과 모범 노인 자격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는데, 당시 포상금(상품권 50만원)에 사비 50만원을 보태 100만원을 다시 마을에 기탁하기도 했다.

당시 공 할머니는 “사회 공헌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이 밥을 먹고 숨을 쉬듯이 일상적인 봉사활동을 해왔다”며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정말 부끄럽다”고 몇 번이나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할머니 딸 박은숙(61)씨는 “봉사는 엄마의 삶의 낙이었다”며 “해부학 연구가 끝나고 선산에 어서 모셔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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