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끌성지' 등기 떼보니…2030 주담대, 4050보다 1억 많았다 [빚에 짓눌린 청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 강서구에 있는 가양 6단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20·30대 청년층에게 ‘영끌 성지’ 아파트 중 하나로 불렸다. 집값이 절정에 치닫던 당시에도 서울 역세권 아파트로는 드물게 매매가 6억원 미만을 유지해서다. 돈이 부족한 청년층도 구매할 수 있는 아파트로 꼽히면서, 더 늦기 전에 일단 집을 사자는 ‘패닉바잉(집값 상승 공포심에 서둘러 매수하는 것)’도 이 아파트에 집중됐다.

‘영끌 성지’ 고점 매수, 대부분 청년층

17일 서울 강서구 가양6단지 아파트 전경. 한때 '2030 영끌 성지'로 불렸지만, 올 초엔 고금리 여파로 실거래가가 40% 가량 하락했다. 오효정 기자

17일 서울 강서구 가양6단지 아파트 전경. 한때 '2030 영끌 성지'로 불렸지만, 올 초엔 고금리 여파로 실거래가가 40% 가량 하락했다. 오효정 기자

19일 중앙일보가 청년 영끌족 부동산 투자 실태를 확인하고자, 가양 6단지 1개 동(78세대) 등기를 전수 조사했다. 해당 동은 이 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면적인 전용면적 39㎡(15평) 세대로만 이뤄져 있다. 명의자 나이로 구분해 보니, 20대(1%·1세대)·30대(24%·19세대) 비중은 전체 25%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소유자 중 30대 이하 비율 11.9%다. 하지만 이 아파트 20·30대 명의자 비중은 이것의 약 2.1배에 달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가양 6단지를 산 청년층은 부채도 다른 세대보다 많았다. 중앙일보가 등기에서 확인한 30대 이하 집주인 평균 근저당액은 2억3116만원으로 40대(1억2116만원)·50대(1억3707만원)와 비교해 1억원가량 많았다. 등기상 명의자가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고 임대를 준 사례는 뺐다. 통상 주택담보대출의 120%를 근저당액으로 설정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20·30대는 1세대 당 약 1억9263만원의 빚을 지고 해당 아파트를 구매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청년층이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빚을 안고 이 아파트를 구매한 것은 집값 상승이 고점에 다다랐던 시기에 매수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실제 등기상으로는 2017년~2019년 해당 아파트 구입자 중 30대 비중은 35%(7세대)로 50대와 함께 가장 많았다. 2020년 이후 매수자 중에서는 30대 이하 비중이 63%(5세대)로 압도적이었다. 두 시기 모두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올랐던 시기다. 이 때문에 이 아파트 30대 이하 평균 매매가는 3억6689만원으로 50대(2억7844만원)와 비교해 역시 약 1억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60대 가계부채 줄 때, 30대는 급증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다른 세대보다 청년들이 비싼 값에 더 많은 빚으로 이 아파트 구매한 것은 최근 부채 증가 배경과 일맥상통한다. 부모 세대 부동산을 높아진 가격 그대로 청년층이 재구매하면서, 그만큼 빚 부담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실제 60대 초반(60~64세) 고령층 가구주의 평균 가계부채는 2014년(6253만원)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들 부채는 2019년(3665만원)에 약 41% 떨어졌다. 반면 30대 중반(35~39세)의 가계부채는 같은 기간 45%(4753→5772만원) 급증했다. 이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연령대별 가계부채(대출금과 전세보증금 포함)를 2015년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재가공한 것이다. 하 교수는 “중·노년층의 부채가 줄면서 동시에 청·장년층의 부채가 늘어나는 모습은 위 세대가 아래 세대에게 주택과 부채를 함께 넘기는 세대 간 자원이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20대 주담대, 연체율 상승 추세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영끌 막차를 탄 청년층은 과도한 빚으로 인해 소비력이 줄고 부채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영끌쪽 부채 부실화 징조는 이미 나오고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19개 은행에게 제출 받은 자료 따르면 29세 이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이번 3분기 0.39% 모든 연령층 중 가장 높았다. 같은 시기 30대 연체율은(0.2%)로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3분기(0.09%)에 비해 2배 넘게 급증했다.

“청년층 빚 권하는 정책 바꿔야”

청년층에 빚을 권하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를 약하게 적용하면서 오히려 “빚내서 집을 사라”는 인식을 확산 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 때 이뤄졌던 전세보증제도는 자금이 부족한 청년층에게 과도한 전세대출을 받도록 장려하고, 갭투자를 부추겼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대출과 세금에 강력한 규제를 적용했지만, 1주택자 청년층에게는 규제 예외 혜택을 허용해 ‘패닉바잉’을 양산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50년 주택담보대출도 소득이 부족한 청년층의 대출 규제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층에 대출 혜택을 준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이들 세대 부채 증가를 정부가 장려한다는 의미”라면서 “빚을 내 주거를 해결하라는 정책보다는 임대 주택 등을 늘리는 방식으로 청년층 주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