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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절친 예능…이젠 조금 식상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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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찐친 케미’를 내세운 tvN 예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최고 시청률 5%를 기록하며 지난 8일 종영했다. [사진 tvN]

‘찐친 케미’를 내세운 tvN 예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최고 시청률 5%를 기록하며 지난 8일 종영했다. [사진 tvN]

“우리끼리 놀러 가는 느낌이긴 하네요. 진짜 편하긴 하다. 잘 모르는 사람 있으면 불편할 수 있잖아.” 지난 8일 종영한 tvN 예능 프로그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콩콩팥팥) 1화 중 한 장면이다. ‘절친’(친한 친구)으로 알려진 출연자 이광수·김우빈·도경수·김기방은 첫 방송부터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케미)를 보여줬다. 평소 하던 그들만의 말장난이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모습 등이 웃음 포인트로 작용했다. 낯선 사이였다면 나올 수 없는 ‘티키타카’(서로 죽이 잘 맞는 대화)에 “기분 좋은 유쾌함이 느껴진다” “연예인의 인간적 모습이 보기 좋다” 등 시청자 호평이 이어졌다. 프로그램은 제작진 목표였던 시청률 3~4%를 넘어선 최고 시청률 5%(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제작진은 ‘절친’끼리 즐거운 추억을 남겨보고 싶다는 배우 이광수 제안으로 그와 친한 연예인을 섭외해 프로그램 기획에 들어갔다. tvN 관계자는 “(그런 배경 덕분에) 1화부터 가까운 사이에서만 나오는 스타들의 진짜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예계 스타들의 소문난 사적 친분을 기반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종영한 ‘택배는 몽골몽골’(JTBC)은 연예계 76년생 용띠 절친 스타들이 몽골로 택배 여행을 떠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박근형 PD, 강훈, 홍경인, 홍경민, 차태현, 장혁, 김종국, 김민석 PD(왼쪽부터)가 지난 8월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JTBC]

지난 10월 종영한 ‘택배는 몽골몽골’(JTBC)은 연예계 76년생 용띠 절친 스타들이 몽골로 택배 여행을 떠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박근형 PD, 강훈, 홍경인, 홍경민, 차태현, 장혁, 김종국, 김민석 PD(왼쪽부터)가 지난 8월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JTBC]

올해 지상파·케이블 채널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에서 방영됐거나 방영 중인 사적 친분 기반의 예능 프로그램은 10편이 넘는다. 조인성·차태현이 운영하는 가게에 그들과 친한 연예인이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등장하는 ‘어쩌다 사장 3’(tvN), 1976년생 용띠 친구 김종국·장혁·차태현·홍경민·홍경인이 출연한 ‘택배는 몽골몽골’, 1988년생 동갑내기 임시완·정해인의 ‘배우는 여행중’(이상 JTBC), 1992년생 아이돌 ‘절친’ 도경수·지코·크러쉬·최정훈의 ‘수학 없는 수학여행’, 개그맨 선후배 김준현·문세윤의 ‘먹고 보는 형제들’(이상 SBS), KBS 공채 개그맨 선후배 김대희·김준호·장동민·유세윤·홍인규의 ‘니돈내산 독박투어’(채널S·MBN) 등이다.

연예계 절친 배우 차태현과 조인성의 tvN ‘어쩌다 사장 3’. [사진 tvN]

연예계 절친 배우 차태현과 조인성의 tvN ‘어쩌다 사장 3’. [사진 tvN]

친분 기반 예능의 장점은 예능에서 필수적인 캐릭터 관계성이 곧바로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미 두텁게 형성된 출연진 간 ‘케미’ 덕분에 등장인물 간 서사를 구축할 필요 없이 곧바로 예능적 재미를 만들 수 있다. 시청자는 ‘절친’ 사이에서만 드러나는 스타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친근감을 느낀다. 연출보다 ‘리얼함’을 원하는 시청자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연스러운 케미를 통해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며 “그래서 친분을 활용한 예능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진으로서도 출연진 섭외가 쉽고, 출연진 간 ‘케미’ 발휘로 일정 수준의 재미와 시청률을 기대할 수 있다. 한 지상파 방송 예능PD는 “연예인의 인맥 발견이란 재미를 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프로그램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지난달 종영한 MBC ‘뮤직인더트립’이 그런 사례다. 돈독한 사이로 소문난 아이돌 스타들이 함께 여행하며 음악을 만드는 모습을 담았는데, 방영 내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출연진들의 친목 외에 새로운 걸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재미를 주는 포인트 없이 ‘케미’만 부각할 경우 외면받기도 한다. 특정 연예인의 ‘겹치기’ 등장으로 비슷한 조합이 반복돼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목요일 저녁 예능인 ‘어쩌다 사장 3’의 차태현·조인성은 같은 방송사의 금요일 같은 시간대 예능에도 게스트로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익숙한 관계성이 반복되면 시청자들에게 식상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분 기반 예능이 주류가 되면서 인맥 없는 연예인은 예능 진입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출연 기회를 얻는 건 특혜로 여겨질 수 있고, 예능 시장이 남성 중심으로 쏠려 여성 신인의 진입이 힘들어진 데다(김헌식 평론가), 이른바 ‘라인’ ‘사단’에 속하지 못한 경우 오히려 친분 기반이라는 점은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하재근 평론가)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친한 사이끼리 똘똘 뭉쳐서 움직이는 모습이 지나치게 자주 연출되면 ‘끼리끼리’ 문화에 대한 시청자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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