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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굴하면 안된다"…'협상 베테랑' 조태열 외교장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일 지명된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통상 분야에서 크고 작은 협상에 관여하며, 경제외교의 최전선을 지켜온 독보적 이력의 소유자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낙점한 것 역시 경제안보가 중시되는 최근 국제정치의 급격한 변화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소감을 말하는 모습. 연합뉴스.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소감을 말하는 모습. 연합뉴스.

다자·경제외교 전문가

외무고시 13회로, 1980년 입부한 조 후보자는 40년간 직업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통상 2과장, 지역통상국장, 통상교섭조정관 등을 거쳐 외교부 2차관, 주유엔 대사를 역임했다.

다자외교와 경제외교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정무 경험도 풍부하다는 평가다. 주미 대사관 근무 때도 정무 업무를 다뤘고, 1차 북핵 위기 때는 한승주 당시 외교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어떤 업무도 가능한 ‘편식 없는 외교관’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라고 한다.

특히 외교부 2차관으로 재직 시 주요 외교 현안을 다루는 부내 대부분 회의에 참여해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했다. 조 후보자는 외교부 역대 최장수 차관 기록(3년 7개월 재임)도 세웠는데, 특히 임기 후반기에는 외교 업무 전반을 다뤘다. 전직 고위 외교관들이 그를 ‘정무·경제 쌍칼 잡이’로 부르곤 하는 이유다.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소감을 말하는 모습. 연합뉴스.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소감을 말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엔서 미국과 긴밀 협의

그는 유엔 대사로 재임(2016년 11월~2019년 10월) 중에는 카운터파트인 니키 헤일리 당시 주유엔 미 대사와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트럼프 행정부와의 주요 소통 채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기 초반에는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 논의를 주도했고, 후반에는 남·북·미 간 대화 국면이 전개되면서 대북 제재 면제를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의를 이어갔다.

조 후보자는 ‘협상 베테랑’답게 강자를 상대하는 데 능숙하다. 그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외교관은 “평소 강자에게는 당당하게, 약자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는 성품”이라고 전했다.

2017년 5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 후 조태열 당시 주유엔한국대사(가운데)가 니키 헤일리 당시 주유엔미국대사(왼쪽)과 벳쇼 고로 당시 주유엔일본대사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7년 5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 후 조태열 당시 주유엔한국대사(가운데)가 니키 헤일리 당시 주유엔미국대사(왼쪽)과 벳쇼 고로 당시 주유엔일본대사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가 유엔 대사로 부임하며 남긴 차관 이임사 중 “여러분이 (강대국 앞에서)비굴하게 굴면 우리 대한민국이 비굴해진다. 패기 있고 기개 있는 외교관이 되길 바란다”, “기회는 꼬리가 없어서 (뒤에선)붙잡을 수 없다. 부담과 함께 찾아오는 기회를 무서워하지 말고 붙잡으라”는 당부는 한동안 부 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 윤 대통령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며, 『승무』, 『낙화』 등의 시로 유명한 고(故) 조지훈 시인의 막내아들이다.

신임 국가안보실장에 장호진 유력

한편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곧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외교부는 장관과 1·2차관이 모두 교체되는 셈이다. 앞서 오영주 전 2차관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1주년을 앞두고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범정부 인·태 포럼에서 외교부 장호진 제1차관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1주년을 앞두고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범정부 인·태 포럼에서 외교부 장호진 제1차관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장 차관의 후임 인선 작업도 진행 중인 가운데 김홍균 주독일 대사가 후보군에 포함됐다고 한다. 김 대사는 외시 18기로, 북미 및 북핵 업무에 정통하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 후보 캠프의 정책자문단 원년 멤버로 현 정부 정책 이해도가 높고,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다. 북미2과장, 외교통상부 평화외교기획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사무차장, 외교부 차관보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냈다.

김 대사는 평화외교기획단장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시절 2010년 북한의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2011년 김정일 사망, 2017년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 등 북한 관련 굵직한 사건을 도맡았다. 꼼꼼하고 스마트한 일 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김홍균 주독일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김홍균 주독일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1차관 후보로 검토되고 있다. 외시 23기인 김 본부장은 지난해 5월부터 윤석열 정부 첫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맡고 있다. 김 본부장은 외교부 내에서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한 경험이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손꼽히며, 주미 대사관과 주중 대사관 근무 경력을 비롯해 주영국 대사를 지내 현장 경험이 다양하다. 외교부 내에서도 온화하고 합리적인 스타일의 리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제10회 한중일협력대화 개회식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제10회 한중일협력대화 개회식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2차관으로는 외부 인사, 특히 여성이 인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에 따라 CNN 서울지국장을 지낸 손지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외교부 문화협력대사)가 유력한 후보다. 손 대사는 이명박 정부 당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해외홍보비서관,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사장 등을 역임해 풍부한 국제 감각을 지닌 인사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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