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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ICBM 두둔한 中…그럴 수록 한·미·일 뭉치고 한·중·일 멀어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며 “보다 진화되고 위협적인 방식”(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지난 18일 ICBM 발사 참관 현장 발언)의 무력 도발 기조를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끝내 ‘역할론’이 아닌 ‘감싸기’를 택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8일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났다. 중국 외교부 제공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8일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났다. 중국 외교부 제공

지난해 3월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4년 4개월 만에 ICBM을 발사했을 때 중국이 이를 묵인했다면, 최근엔 미사일 도발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특히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18일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난 자리에서 “전략적 차원에서 중·북 관계를 보고 있다”고 말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역내 안보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 자체를 중국의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中 대신해 대미투쟁 수위 올리는 北 

북한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 확장억제와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주요 분기점마다 미사일 도발로 응수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규범·질서를 ‘극단적 이기주의’로 규정하는가 하면 한·미·일 공조를 ‘신냉전 질서’로 비판했다. 대미(對美) 전선 앞에서 북·중이 택한 일치된 기조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ICBM 시험 발사 현장에서도 지난 15일 한·미핵협의그룹(NCG) 회의를 겨냥한 듯 “조선반도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근간을 흔드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적들의 온갖 군사적 위협 행위들을 절대로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며 “미제와 추종무리들의 악질적인 대결 야망은 저절로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가 대북제재 결의를 반대하는 등 북한을 옹호하는 태도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 AP=연합뉴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가 대북제재 결의를 반대하는 등 북한을 옹호하는 태도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 AP=연합뉴스

중국은 19일(현지시간) 예정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합리적 우려에 따른 대응’으로 옹호하는 태도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회의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소집됐다.

북·중 밀착에 멀어지는 한·중·일 협력  

이처럼 중국이 북한의 무력 도발을 용인·독려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한 역내 협력의 또 다른 축인 한·중·일 협의체는 정상 가동되기 어렵다.

특히 한·일은 그간 한목소리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제지하기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해 왔다. 지난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북핵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고, 박진 외교부 장관은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도발과 핵 개발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대한 큰 위협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중국은 한·중·일 협력보다 북한의 무력 도발을 협상력 제고 수단으로 삼는 것을 훨씬 효과적인 대미 협상 카드로 인식한다”며 “특히 내년 4월 한국 총선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있는 만큼 중국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3국 정상회의 등 한·중·일 협력 논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다. 3국 외교장관은 회의를 통해 3국 정상회의를 가능한 이른 시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뉴스1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다. 3국 외교장관은 회의를 통해 3국 정상회의를 가능한 이른 시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뉴스1

실제 이날 회의 이후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둘러싼 3국 논의는 답보 상태다. 외교장관 회의에선 3국이 정상회의 준비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지만, 정작 실무선에서 의제·일정 협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상회의 개최 목표 시점 역시 연내 개최→내년 초 개최→내년 상반기 개최 순으로 점차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北 도발 거세질수록 강해지는 한·미·일 공조 

2019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단체조공연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서 관중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2019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단체조공연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서 관중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 삼아 역내 안보적 긴장을 높일수록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해진다는 점은 부담일 수 있다. 최근의 한·미·일 공조는 미국의 대중 견제 목적에 부응해 움직이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주도한 한·일 관계 정상화 노력에 힘입어 한·미·일 공조가 본격화한 점을 감안하면 3국 공조 체제가 강해질수록 역내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도 높아진다.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의 협력 없이는 중국도 국면 타개가 어려울 수 있다. 중국으로선 미·중 경쟁의 연장선에서 북한을 활용하는 전략이 한·중·일 협력 저해와 한·미·일 공조 강화 등 스스로를 옭아매는 모순적 결과로 이어지는 셈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미국의 주도로 한·미·일 공조가 이뤄지는 상황을 되돌리기보단 오히려 러시아와 베트남 등 또 다른 '내 편'을 포섭해 미국에 맞서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중 경쟁에 활용할 수 있는 카드로 역할을 하는 한 북·중 협력 기조 역시 당분간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은 이날 북한의 전날 ICBM 발사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에서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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