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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이스라엘을 버렸다"…전쟁이 美유대계도 갈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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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단체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소속 시위대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휴전을 촉구하며 고속도로를 막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대인 단체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소속 시위대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휴전을 촉구하며 고속도로를 막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이후 미국 사회의 여론이 이스라엘 지지와 팔레스타인 지지로 분열하는 가운데 유대계 미국인 사이에서도 현격한 입장 차이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유대계 노년층 다수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반면 젊은 층에선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3대가 함께 사는 유대계 미국인 가족을 통해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이후 커지고 있는 세대 간 시각차에 주목하는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예루살렘 랍비학교 출신 데이비드 워샤프터(53)의 딸 에마누엘 시피(20)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이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국가라고 믿게 됐다고 한다.

프린스턴대에서 ‘유대인 진보주의자 연합’을 이끌고 있는 시피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이 본격화된 후 이런 생각이 굳어졌고 최근 휴전 촉구 집회 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의 오빠 자카리아 시피(23)는 반(反)이스라엘 성향이 한층 짙다. 자카리아는 “많은 유대계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이스라엘 정부는 꾸준히 우경화하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사는 유대계 미국인 가족 에마누엘 시피(20ㆍ오른쪽)와 오빠 자카리아 시피(23). 사진 페이스북 캡처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사는 유대계 미국인 가족 에마누엘 시피(20ㆍ오른쪽)와 오빠 자카리아 시피(23). 사진 페이스북 캡처

반면 에마누엘과 자카리아 남매의 할머니 캐럴 워샤프터(86)는 시온주의자를 자처한다. 캐럴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여기는 에마누엘에 “손녀가 이스라엘을 포기한 것 같다. 그게 나를 슬프게 한다”고 털어놨다.

캐럴과 그의 남편 조나단 워샤프터는 1973년 예루살렘에서 욤 키푸르 전쟁(제3차 중동전쟁)을 직접 겪었다. 시온주의 가정 출신으로 신경안과 의사였던 조나단 워샤프터는 전쟁 때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당시 전쟁으로 자녀들의 교사 2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당시 경험을 통해 시온주의자가 됐다고 밝힌 캐럴은 미국으로 이주한 뒤 홀로코스트 생존자 인터뷰에 자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시오니스트 모친과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딸 사이에 있는 데이비드 워샤프터는 자신을 ‘진보적인 시온주의자’라고 말했다. 데이비드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자란 샤나 시피(52)와 결혼했으며, 그가 다녔던 유대인 학교도 진보적인 시오니스트 학풍을 가진 곳이다. 이들 부부는 유대인의 사회정의 추구 개념 ‘티쿤 올람’(tikkun olam)을 굳게 믿고 있다고 한다. 유대 구전 율법서에 기록된 ‘티쿤 올람’은 ‘세상을 치유하라’는 뜻으로 사회 정의와 책임 의식을 담고 있다.

부부는 딸 에마누엘, 아들 자카리아에게도 이런 신념을 가르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목소리를 내도록 격려해 왔다. 데이비드는 “모든 정치적 이슈를 놓고 딸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중동) 위기 상황을 놓고도 마찬가지”라면서도 “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믿는 바를 지지하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WSJ은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은 3대에 걸친 이 가족에 유대인 국가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를 던졌다”며 “(이 가족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의 유대인 가족들은 비슷한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 일부는 극렬하게 분열돼 있다”고 전했다. 노년층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젊은 층 유대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2등 국가로 만들어 적대감을 조성하는 강대국이라며 비판한다.

네브래스카-링컨 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인 제이미 엘로우스키(33)는 하마스의 공격을 옹호하진 않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해 왔던 잔혹한 피해가 누적된 결과라는 취지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꾸준히 올렸다가 봉변을 치렀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가족ㆍ친척 중 일부가 그를 “자기혐오 유대인”, “반역자”라고 부르며 질책을 했다고 한다. 엘로우스키의 부모조차 2주 동안 딸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엘로우스키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고 WSJ에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미 등록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어느 쪽 주장에 더 공감하느냐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 사진 WSJ 홈페이지 캡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미 등록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어느 쪽 주장에 더 공감하느냐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 사진 WSJ 홈페이지 캡처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에 대한 노년층과 젊은 층 사이의 시각차는 유대계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서 감지된다. WSJ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미국 유권자 1500명을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어느 쪽 주장에 더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65세 이상 노년층은 이스라엘을 꼽은 쪽이 53%(팔레스타인 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18~34세 응답자들은 이스라엘을 꼽은 이가 31%였고 팔레스타인을 꼽은 비율은 23%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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