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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스타 임윤찬 탄생기…거장 사카모토의 마지막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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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오드]

지난해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오드]

감미로운 클래식 피아노 선율을 담은 다큐멘터리 두 편이 차례로 연말 극장가를 적신다. 한국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의 지난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과정을 그린 ‘크레센도’(20일 개봉), 올 3월 직장암으로 작고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고별 연주를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27일 개봉)다. 점점 세게 연주하란 뜻의 음악 기호 ‘크레센도(cresc.)’, 유명 작곡가가 완성해 번호를 매긴 작품을 말하는 ‘오퍼스(op.)’ 등 제목의 의미가 각 다큐 주인공의 음악세계를 함축한다.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개봉한다.

‘크레센도’는 올해 K클래식 인기의 중심에 선 임윤찬이 지난해 6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하며 스타로 급부상한 탄생기를 그렸다. 지난 8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버전에 연주 장면과 임윤찬의 어린 시절 사진을 곁들인 인터뷰 등 15분을 추가했다.

총 111분의 상영시간이 임윤찬이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3주에 걸친 4차례 경연 무대 안팎과 참가자 인터뷰로 채워졌다. 연주 장면은 15대 카메라로 촬영해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클라이번 재단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재단 측 의뢰로 연출을 맡은 헤더 윌크 감독은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 카메라를 들 때만 해도 다큐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소 냉전 시대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이 구 소련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받으며 전파한 평화의 메시지로 출범한 대회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이 콩쿠르가 러시아 경연 참가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자, 다큐도 처음엔 양국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촬영된다. 그런데 임윤찬의 등장과 함께 초점이 바뀐다.

지난해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사진 위)을 담은 클래식 다큐멘터리 ‘크레센도’와 올 3월 작고한 피아노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의 마지막 20곡 연주를 담은 콘서트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개봉한다. [사진 엣나인필름]

지난해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사진 위)을 담은 클래식 다큐멘터리 ‘크레센도’와 올 3월 작고한 피아노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의 마지막 20곡 연주를 담은 콘서트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개봉한다. [사진 엣나인필름]

윌크 감독은 “임윤찬의 음악은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기에 그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본선 1차 임윤찬 연주 전에 29명의 연주를 들었지만, 맨 마지막 임윤찬이 연주한 모차르트 소나타가 청중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겸손함과 음악에 대한 순수한 헌신이 그를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만들었고, 특히 지금의 긴장된 시대에 더 환영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윤찬이 2차전 경연곡 스크랴빈의 ‘환상소나타’에 이어, 3차전에서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선보이자 심사위원단에선 “이 세상 재능이 아니다”란 감탄이 터져 나온다.

심사위원장인 마린 올솝의 지휘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결승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참가곡이다. 차분한 리허설 뒤 결승에서 돌풍을 일으킨 임윤찬의 연주가 클라이번의 당시 연주와 교차 편집된다.

대회가 끝난 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차례로 악수를 청하며 “평생 잊지 못할 연주였다”고 고마움을 표하는 무대 뒤 장면은 “이 연주를 하늘에 계신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바친다”고 밝힌 임윤찬의 뺨에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린 순간까지 포착해낸다. 다큐는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세계에 꺼내는 어려운 일도 음악가의 사명”이란 그의 말로 마무리된다. ‘크레센도’는 사전 시사회표가 빠르게 동난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오직 그와 피아노 둘 뿐인 절제된 흑백 영상부터 고인의 음악을 닮았다. 2020년 직장암을 진단받고 올 3월 작고한 그가 선별한 자작곡 20곡을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9월 8~15일 연주하며 촬영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의 주제곡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부터 임종 전 1월 발매한 마지막 12집 정규음반의 ‘20220302’ 등이다. 마지막 음반은 발매 직후 BTS(방탄소년단) 리더 RM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추천사를 올려 화제가 됐다. 하루하루 병마와 싸워가며 일기처럼 채워간 곡들에 그날 날짜를 제목으로 붙여 완성한 앨범이다. 엔딩곡 ‘오퍼스’까지 8일 간 하루 3곡 정도를 2~3번씩 연주한 걸 단 한번의 콘서트처럼 편집해 담았다.

내레이션 없이 연주곡을 연속해서 들려주는데 그럼에도 상영시간 103분의 흡인력이 크다. 연주자가 홀연히 사라지고, 주인 없는 피아노의 건반들이 저절로 연주되는 마지막 장면은 그의 영혼이 남아 아름다운 선율을 계속해서 자아내는 것처럼 다가온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뒤 한국에서 사운드 특화된 돌비 애트모스 버전으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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