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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합의했는데 '땅땅땅'…1·2심의 실형, 대법이 뒤집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9일 밤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밤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범죄로 기소됐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한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을 할 수 없는 범죄를 뜻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교통사고처리법위반(치상), 도로교통법위반(업무상 과실재물손괴) 등 혐의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인천지법에 재판을 다시 하라고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11월, 대낮에 혈중알코올농도 0.077%의 상태로 SUV 차량을 운전하던 중 인천 부평구의 한 도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를 들이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 사고로 택시에 타고 있는 택시기사 B씨는 요추 염좌 등 전치 2주의 부상을 당했고, 택시 차량도 수리비 251만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검찰은 이에 따라 A씨에게 교통사고처리법상 치상죄 등 혐의뿐 아니라, 반의사불벌죄인 도로교통법상 업무상과실 재물손괴 혐의도 적용해 지난해 7월 기소했다. A씨가 피해자 B씨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A씨는 1심 선고 두 달을 앞둔 지난 3월, B씨와 가까스로 합의한 뒤 ‘피고인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B씨 명의의 합의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4단독(안희길 판사)은 피해자와의 합의 사실을 양형 감경 요소로 꼽으면서도 A씨에게 징역 6개월형을 선고했다. “음주운전·무면허 운전으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주운전 중 사고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개선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A씨는 항소했다.

그렇지만 2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김석범)도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뒤에도 자중하지 않고 불과 1개월이 지난 2022년 3월경 판결이 확정된 또 다른 죄를 저질렀다”며 징역 6개월형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 역시 “A씨가 원심에서 피해자와 합의했고 손괴로 인한 피해 회복이 이뤄진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만 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마포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찰들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마포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찰들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대법원은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피해자 명의의 합의서가 1심 판결 선고 전에 1심 법원에 제출됐으므로, 원심으로선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도로교통법상 업무상 과실재물손괴 공소사실에 대해 공소를 기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령 A씨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사실을 항소 이유로 내세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직권으로 조사·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과 유죄로 인정된 나머지 부분 전체에 대해 하나의 형이 선고됐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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