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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경전철 '적자 늪'…엉터리 수요예측에 매년 수백억 손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신설선 종합관리동 검수고에서 직원들이 열차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신설선 종합관리동 검수고에서 직원들이 열차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교통망의 ‘실핏줄’ 격인 전국 주요 경량 전철(경전철)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개통 이후 당초 예상치에 훨씬 못 미치는 승객이 이용하면서다. 수요예측 단계부터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우이신설선 신규 사업자 공모를 위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우이신설선은 강북구 우이동과 동대문구 신설동 간 11.4㎞를 연결하는 서울 ‘1호’ 경전철이다. 우이신설선 운영사인 우이신설경전철㈜(포스코이앤씨 컨소시엄)은 서울시로부터 30년 운행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운행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스스로 사업권을 포기했다. 과도한 적자로 더는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이신설경전철 관계자는 “지난 2020년부터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라며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서울시와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이신설선은 당초 하루 평균 13만2541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개통을 시작하니 하루 평균 수송 수요는 절반 수준인 6만7000명에 불과했다.

“경전철 적자 감당 힘들어”

적자 늪에 빠진 주요 경전철.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적자 늪에 빠진 주요 경전철.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영등포 샛강역에서 관악구 관악산(서울대) 역을 잇는 신림선도 우이신설선과 비슷한 상황이다. 하루 평균 이용객 13만명을 예상하고 지난해 5월 운행을 시작했지만, 하루 평균 승객수는 5만4000명에 불과하다(7월 기준). 신림선을 운영하는 남서울경전철㈜는 지난해 1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금 상황이 계속한다면 서울시는 신림선에 매년 120억원을 지원해야 한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서울시의회 본회의 시정 질의에서 “신림선은 초기부터 홍보를 열심히 했는데 이용객이 예상의 절반도 안 된다”며 “경전철 적자 폭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부산김해경전철 매년 548억 예산지원

신림선 경전철 승합장에서 바라본 선로의 모습. 중앙포토

신림선 경전철 승합장에서 바라본 선로의 모습. 중앙포토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284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용인경전철은 교통개발연구원(현 한국교통연구원)이 하루 이용객을 16만명으로 예상했지만, 지난해 실제 이용객은 일평균 6만명 수준이었다. 2011년 9월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도 12년째 연평균 548억원의 적자를 재정으로 메우고 있다. 지난해 부산김해경전철 적자 보전액은 김해시 몫만 520억원에 달했다. 부산시도 282억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심지어 지금은 새 사업자가 운행을 맡은 의정부경전철의 경우 2017년 5월 3600억원대의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한 바 있다. 당시 대우엔지니어링이 실시한 수요예측 용역은 2015년 기준 하루 승객수가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이용객(5만3000명)을 웃도는 수치다.

의정부경전철을 운영했던 GS건설 컨소시엄은 현재 운영에 손을 떼고 의정부시를 상대로 투자금의 일부(1153억원)를 돌려달라는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민사3부는 지난 2일 의정부시가 민간 사업자들에게 108억46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의정부경전철은 2017년 3600억원대의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었다. 현재는 사업자를 교체해 정상 운영 중이다. 중앙포토

의정부경전철은 2017년 3600억원대의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었다. 현재는 사업자를 교체해 정상 운영 중이다. 중앙포토

교통 실핏줄 경전철 '적자 늪' 원인은

경기도 용인시 경전철. [뉴시스]

경기도 용인시 경전철. [뉴시스]

지자체가 줄줄이 경전철을 도입한 건 철도교통망의 ‘실핏줄’ 기능을 해서다. 철도가 장거리 수송을, 중전철이 광역도시 간 연결을 담당한다면, 경전철은 중소도시 간 연결이나 대도시 내부에서 교통 수요를 담당한다. 1㎞당 건설비용은 전철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빚더미에 올라앉은 경전철은 “수요예측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전철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근본적으로 ‘미래 예측’에 실패한 게 원인이다. 한 경전철 관계자는 “통상 교통 수요예측은 통행발생과 통행분포, 수단선택, 노선배정 등 4단계 수요추정모형을 기반으로 전문기관이 예측하는데, 해당 예측기법에 적용해 추정한 수치가 틀린 건 아니다”며 “이는 지자체가 제3의 기관을 통해서 검증까지 거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사 기간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경전철 공사에는 최소 5~6년은 걸린다. 공사 도중 문제가 발생해 공기가 길어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수요예측 시점과 실제 운행 기간에 시차가 발생하면서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환경변화가 발생한다.

예컨대 2017년 개통한 우이신선설은 수요예측 시점(2006년)과 무려 11년 차이가 난다. 수요예측 당시 길음뉴타운 개발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길음뉴타운은 아직도 100%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 거시 변수도 예상과 달랐다. 신림선이 수요예측을 했던 2006년엔 조만간 서울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면서 현재 서울 인구는 977만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경전철 사업자는 민간이 직접 수요를 예측하고 사업비를 회수하는 수익형 민간투자(BTO) 방식이었다”며 “주무 관청 책임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사업자의 예상이 빗나가면서 수요예측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역주민 민원을 우려한 지자체 정책도 경전철 사업성에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우이신설선의 경우 경전철이 개통하면 일부 버스노선 폐지·조정이 기대됐다고 한다. 하지만 버스에 준공영제를 적용한 서울의 경우 수익이 나지 않는 버스노선도 서비스를 제공할 유인이 있다. 쉽게 말하면, 우이신설선이 개통했는데도 구간이 겹치는 기존 버스노선 폐지는 제한적이었다는 뜻이다.

서울시 경전철 추진 현황.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서울시 경전철 추진 현황.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경전철과 버스는 수요가 상당히 겹치는 경쟁수단인데 서울시가 노선 개편에 소극적인 편”이라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철도와 버스 정책이 따로 노는데 서울시 차원에서 양자가 보완적 관계가 되도록 총체적 노선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과도한 무임승차 비율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65세 이상 노인이 지하철에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탑승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연간 지하철 무임수송 비용 감내도는 우이신설선 35억원, 의정부경전철 29억원, 용인경전철 16억원 등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낙관적 편향이 야기한 부실한 수요예측 때문에 예산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거나 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하고 있다”이라며 “우후죽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경전철 사업이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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