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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대형학원 불러 입시설명회…교육부 말려도 강행됐다

중앙일보

입력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 대학 부스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학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 대학 부스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학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지난 16일 오후 1시 서울의 한 문화센터에 200여명의 학부모, 수험생이 몰려들었다. 이 지역 구청이 개최한 무료 대입 설명회를 찾은 인파였다.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된 예약 인원은 213명이었지만, 미리 준비된 281석에 빈자리가 없었다. 강의는 유명 대형학원의 대표가 했다. 학부모들은 이 학원의 정시모집 배치참고표를 훑어보거나 필기를 하며 강의에 집중했다. 강사가 “최근 수학 7등급을 받은 학생도 인(in) 서울에 합격하는 경우를 봤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옅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날 강의를 들은 N수생 정모씨는 “무료인 데다 모르던 정보를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다음 달 초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앞두고 기초자치단체가 개최하는 설명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학원 대표나 사교육 업체 인사를 초빙해 지역의 학부모들에게 입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자체의 사교육 입시 설명회 잇따르자 논란

지난달 말부터 서울 25개 자치구 중 사교육 연사를 초빙해 정시모집 설명회를 개최한 곳은 13곳이다. 종로학원, 이강학원, 비상교육, 메가스터디, 유웨이 등 다양한 업체의 ‘간판스타’가 초빙됐다. 지방에서도 비슷한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대구 남구청, 광주 남구청, 경기 군포시 등 지역 기초자치단체도 최근 사교육 인사들을 초청해 지역 수험생, 학부모를 위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주최 측은 “입시 정보에 대한 지역 주민의 요구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모습. 뉴스1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모습. 뉴스1

그러나 반복되는 지자체 입시 설명회가 반복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최근 “공공 영역에서 사교육 유입 창구를 열어주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올해 1~8월 사교육 업체 연사를 초청한 입시 설명회는 지자체 54건, 학교 9건 등 63건”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에는 총 43건, 2019년에는 총 156건의 입시설명회가 사교육 업체 관계자와 함께 진행됐다.

교육부도 이런 관행이 잘못됐다고 보고 지난달 각 교육청과 시·도에 사교육 인사를 배제해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에서 교육부는 “최근 일부 시·도 교육청 등에서 사교육 업체 일원이 참여하는 입학설명회, 토크콘서트 등을 개최해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는 사례가 있다.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밝혔다. 하지만, 적지 않은 행사가 원래 계획대로 강행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자체의 행사 개최 여부를 우리가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교육을 인기 관리에 악용” vs “주민 만족도·가성비 높아”

지난10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이 개최한 '2024 정시지원 변화 및 합격선 예측, 합격전략 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행사장 입장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10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이 개최한 '2024 정시지원 변화 및 합격선 예측, 합격전략 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행사장 입장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들은 사교육과 지자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선출직 지자체장이 입시 열기를 인기 관리에 악용해 온 것은 해묵은 악습이나, 이는 공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는 정부 방침과 맞지 않다”며 “앞으로는 입시설명회 개최 시 교육청과 대학교육협의회, EBS 등 공교육기관 강사를 선정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사교육 강사 쪽이 공교육보다 수요나 만족도가 높다”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우리도 공교육 인사를 부르고 싶지만, 학부모들이 재수생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교육 쪽을 선호한다”며 “사교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보 접근을 막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행사비라고 해봐야 강의료, 자료 인쇄비 등을 쓰고 나면 300만원 남짓인데 다녀온 분들의 만족도는 높다”며 “선거나 구민 수요 등을 생각하면 더 늘려도 모자를 판”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행사라는 것이다.

강사들 역시 금전적 목적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입시업계와 지자체에 따르면 한 번 강의 때 강사는 50만~200만원 수준의 강의료를 받는다. 최근 기초자치단체 설명회에 다녀온 한 강사는 “내 이름에 대한 신뢰도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부수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역 주민에게 봉사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강사는 “설명회에서 당협위원장 등 지역 정치인들이 앞다퉈 주민들에게 얼굴을 내밀더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주민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입시설명회를 더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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