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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에 속아 2000만원 낸 술집, 100만원 지문인식기 산다

중앙일보

입력

인파로 붐비는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 연합뉴스

인파로 붐비는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 연합뉴스

서울 창천동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모(44)씨는 지난달 수능이 끝난 뒤부터 매주 종업원들에게 신분증 확인을 확실히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팔다 적발돼 벌금 2000만원을 냈기 때문이다. 이씨는 “한 학생이 대학 과잠바까지 입고 있어서 미성년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교육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불안해서 지문으로 본인을 인증할 수 있는 신분증 검사기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연말·연초 성수기를 맞아 술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미성년자 주의보’가 내렸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적발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서다. 통상 1~2개월에 달하는 영업정지도 월세·인건비가 고스란히 손해로 남는데다, 단골까지 떨어져나갈 수 있어 자영업자들 입장에선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미성년자에 주류를 팔다 적발되는 건수는 코로나 19 영업제한이 한창이던 2021년 1648건이었지만, 지난해 1943건까지 늘었다. 자영업자연대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영업 제한이 풀리면서 신고로 처벌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16일 오후 찾은 홍대와 신촌의 술집에서 대학 학생증을 내밀자 대다수 업소에서 난색을 표했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여권을 제외한 신분증은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교동의 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모(25)씨는 “사장님이 틈만 나면 신분증 검사를 강조해 30대 이상처럼 보여도 무조건 검사하는 편”이라며 “가끔가다 기분 나빠 하는 손님들이 있지만 내 책임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업주들이 특히 경계하는 건 모바일 신분증이다. 모바일 신분증이 SNS에서 손쉽게 위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신분증 위조’ ‘신분증 제작’ 등 키워드를 검색하자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는 QR코드를 제작해주는 업체 수십 곳이 나왔다. 비용은 3000원에서 3만원 가량으로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쉽게 위조할 수 있다. 연남동의 한 술집에서 일하는 직원 정모(32)씨는 “모바일 신분증은 위조가 많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분증 검사 시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X(옛 트위터)에 '신분증 위조' '신분증 제작' 등 키워드를 검색하면 모바일 신분증을 제작해준다는 홍보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X 캡처

X(옛 트위터)에 '신분증 위조' '신분증 제작' 등 키워드를 검색하면 모바일 신분증을 제작해준다는 홍보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X 캡처

이 때문에 일부 자영업자들은 별도의 본인 인식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신분증에 나온 지문과 본인의 지문을 비교해 진위를 구별할 수 있는 검사기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얼굴을 인식해 신분증 사진과 대조할 수 있는 검사기를 도입하는 업주들도 나타났다. 8월 자신이 운영하는 수원의 술집에 사진 대조기를 도입한 조모(50)씨는 “검사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 100만원 가량을 들여 기기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검사가 허술한 틈을 타 술집을 찾는 미성년자들을 막기 위해 지문 인식 신분증 검사기를 설치한 모습. 싸이패스 홈페이지 캡처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검사가 허술한 틈을 타 술집을 찾는 미성년자들을 막기 위해 지문 인식 신분증 검사기를 설치한 모습. 싸이패스 홈페이지 캡처

자영업자 단체에서는 업주들 뿐만 아니라 술집에 출입한 미성년자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무호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개발국장은 “제도를 악용하는 미성년자들에게 일정 시간 이상 봉사를 하게 하거나 부모와 함께 교육을 받게 하는 등 업주뿐만 아니라 제도를 악용한 사람들에게도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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