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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증권사끼리 불법 돌려막기…수천억 손실, 고객에게 전가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증권사들이 회사간 금융상품 ‘돌려막기’로 고객 손익을 다른 고객에 전가하는 등 위법 관행을 이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5월 이후 미래에셋증권·하나증권·NH투자증권 등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 업무 실태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를 17일 내놨다.

이번 점검은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증권사 랩·신탁에서 장·단기 자금 운용 불일치로 환매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등의 상황이 빚어진 데 따라 이뤄졌다. 특히 일부 증권회사가 고객의 투자 손실을 회사 자산으로 보전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랩과 신탁은 증권사가 투자자와 일대일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상품이다.

금감원 검사 결과 9개 증권사 운용역들이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 자전 거래를 통해 고객계좌 간 손익을 이전한 사실이 드러났다. 예컨대 A증권사는 만기가 도래한 고객의 계좌에 들어있는 기업어음(CP)을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B 증권사에 매도하고, 대신 B증권사의 다른 계좌에서 유사한 CP를 A증권사 내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고객의 계좌에서 비싸게 사주는 방식이다. 이런 거래를 반복해 계약 만기 시기나 고객의 환매 요청이 있을 때 계좌 원금 및 목표수익률을 맞춰준 것이다.

또 다른 증권사는 지난해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약 6000여 번의 연계·교체 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하며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사이에 전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방식으로 손실을 전가한 금액은 증권사별로 수백~수천억원 수준이며, 합산하면 조 단위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9개 증권사 모두 이런 유형의 손익 이전이 확인돼 업계에 만연해 있었던 방식이라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통해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관련 혐의자 30여 명의 주요 혐의 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법인 고객의 목표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자기 자본을 동원한 사례도 들통났다. 한 증권사는 지난해 11~12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신탁계좌를 통해 자사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 매수했다. 이런 식으로 고객에게 총 1100억원의 이익을 제공했다.

금감원은 “이번에 확인된 결과에 따라 랩·신탁 시장 질서를 신속히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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