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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규제 완화, 고소득자만 누렸나…고소득 차주 1년새 2.6배

중앙일보

입력

서울 도심 아파트. 연합뉴스

서울 도심 아파트. 연합뉴스

올해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새로 받은 고소득자 수가 1년 만에 2.6배로 늘었다. 전체 신규 차주가 2배로 늘어나는 동안 고소득 차주는 더 크게 늘면서 주요 은행 신규 주담대 차주 중 고소득 차주 비중도 1년 새 4%포인트(p) 넘게 뛰었다.

정부가 올해 들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등을 풀면서 주택 경기가 살아났지만 소득 기준 규제인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유지하면서 고소득자만 부동산 규제 완화의 혜택을 누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기준 고소득(소득 8000만원 이상 기준) 주담대(이주비·중도금·전세대출 등 제외) 신규 차주 수는 5만632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만1721명)의 2.6배 정도다.

같은 기간 전체 주담대 신규 차주 수는 17만4451명에서 33만7397명으로 늘었다. 약 2배로 증가한 것이다.

전체 신규 차주 수보다 고소득 신규 차주 수가 더 빠르게 늘면서 3분기 누적 기준 고소득 차주 비중은 16.7%로, 1년 전(누적 기준 12.5%)보다 4.2%p 상승했다.

올해 들어 주담대 신규 차주가 늘어난 것은 주택 경기 회복으로 매매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거래가 일어나면서 매매자금을 조달할 때 주담대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더욱 커졌다.

실제로 주담대 신규 차주의 평균 대출금액은 지난해 말 약 1억5100만원에서 올해 3분기 약 1억9500만원으로 증가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도 맞물렸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 제한을 풀었다. 보유주택·규제지역·주택가격별로 설정돼 있었던 LTV 차등 적용 규제도 폐지했다.

올해 초에는 서울 4개구(강남·서초·송파·용산)를 제외하고 규제 지역을 대폭 해제하는 등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갔다.

부동산 경기 회복 속에서도 올해 유난히 고소득 차주 비중이 높아진 배경에는 차주별 DSR 규제 유지가 있다. 차주별 DSR 규제는 상환해야 할 대출 원리금이 소득 대비 일정 비율을 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1억원 초과 대출자를 대상으로 DSR 40%(제2금융권 50%) 규제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LTV 등 규제를 완화할 때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경우는 연봉이 높은 고소득자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연봉이 5000만원인 무주택자가 14억원 아파트 구매 시 LTV가 50% 등으로 완화되더라도 주담대 최대한도는(금리 4.8%·40년 원리금 균등 분할 상환 가정 시 3억5500만원) 차주별 DSR 규제에 막혀 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고소득 차주 위주의 대출 증가세가 한국 사회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와 황설웅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소득 불평등' 보고서를 통해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양상을 분석한 결과 2018년 이후 신규 부채 대부분이 주담대를 목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취득 용도의 신규 가계부채가 발생할 경우 저소득 가계는 소득이 줄어드는 반면 고소득 가계는 소득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두 연구자는 "소득이 높은 가계일수록 상대적으로 많은 대출을 통해 더 많은 비금융자산을 취득할 수 있었고, 이후 주택가격의 지속적 상승은 자산 불평등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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