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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유대계 '가자 전쟁' 비판…'시온주의자' 바이든 골머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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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호 06면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변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지난 6월 5일 워싱턴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AIPAC 연례 정책회의에 참가해 마이클 투친 AIPAC 회장(오른쪽)과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AIPAC는 유대인 로비단체로 워싱턴 정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지난 6월 5일 워싱턴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AIPAC 연례 정책회의에 참가해 마이클 투친 AIPAC 회장(오른쪽)과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AIPAC는 유대인 로비단체로 워싱턴 정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12명 이상의 유대계 미국 연방하원 의원들이 와서먼 슐츠 의원 사무실에 모였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발발 후 유대계 의원들의 첫 번째 모임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서 전쟁이 발발한 지가 50여일이 지났는데도 미 연방의회 내 유대계 의원들의 하나로 정리된 공식 입장이 없는 상황이다. 플로리다 출신 10선의 영향력 있는 유대인 민주당 의원인 슐츠가 나섰지만 27명의 유대계 하원의원 중에 절반도 참석하지 않았다. 슐츠 의원은 36명의 유대계 연방의원 가운데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취하고 있는 의원이다. 그녀는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며 2008년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서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낸 거물이다.

전쟁으로 인해서 반유대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조차 이렇게 힘든 일인 것은 미국 내 유대인들의 분열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 준다. 지식인사회와 대도시 젊은 세대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민족적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유지하며 유대공동체의 강력한 결집력을 과시해 온 미국유대계 사회에서 지난 50여년 동안 없었던 일이다.

2008년 미 대선에서 당선한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에 대한 보수우파 진영의 반응이 티파티였고, 티파티의 공격적인 확장에 대한 반응으로 진보진영에 매우 자연스럽게 소위 민주사회주의가 빠른 속도로 대두됐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버니 샌더스 바람이다. 당시 경선에서 승자는 힐러리 클린턴이었지만 정책노선에선 샌더스가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마르 의원, 금기 깨고 AIPAC 비판

10선의 유대인 민주당 하원의원인 와서먼 슐츠(왼쪽). 소말리아 난민 출신의 일한 오마르 민주당 하원의원(미네소타주·오른쪽)은 하원에서 히잡을 착용한 최초의 여성이 됐다. [AFP·AP=연합뉴스]

10선의 유대인 민주당 하원의원인 와서먼 슐츠(왼쪽). 소말리아 난민 출신의 일한 오마르 민주당 하원의원(미네소타주·오른쪽)은 하원에서 히잡을 착용한 최초의 여성이 됐다. [AFP·AP=연합뉴스]

샌더스 캠프에 몰린 20~30대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이후 대거 선출직 정치권으로 나섰다. 민주당의 중도우파 자리(클린턴계)를 오랫동안 꿰차고 있던 지도부 의원들이 2018년 중간선거에서 이들의 과감한 도전에 스러졌다. 뉴욕에서 20대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가 당 서열 3위인 거물 조 크라울리를 경선에서 날렸고 미시간에서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라시다 티라입이 연방하원 50년의 거물 존 커니어스를 눌렀다. 티라입 의원은 최초의 팔레스타인계 연방의원 기록을 세웠다. 미네소타에서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의 일한 오마르가 민주당 중앙위원회 간부이며 5선의원인 케스 엘리슨을 제쳤다. 보스턴 시의원이며 빈민운동가 출신의 아이아나 프레슬리는 매사추세츠주 7선거구에서 보스턴의 터줏대감인 10선의 거물정치인 마이크 카푸아노를 예상을 깨고 거의 20% 포인트 격차를 보이면서 이겼다. (뉴저지주의 한국계 앤디 김도 이때 풀뿌리정치의 바람을 타고서 100년 공화당지역에서 당선됐다.)

2018년 중간선거를 통해서 하원에 입성한 이 진보여성 정치인들 4명은 하원 민주당을 확실하게 진보이념의 정치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4명의 유색인종 여성의원들은 하원에서 이슈마다 연대하면서 특별관계를 과시했다. 이들의 발언은 성역이 없고 거침이 없다. 이들 4명은 자신들과 지지자들 사이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스쿼드(Squad)라고 자칭하고 있다. 스쿼드는 힙합문화에서 유래한 용어로 자신이 동일시하고 싶은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 그룹을 뜻하는 말이다. 2020년 선거를 통해 중도우파의 거물급들을 물리치고 같은 방식으로 하원에 입성한 4명이 이 스쿼드에 더 추가됐다.

2019년 1월 낸시 펠로시가 만 8년 만에 다시 의장에 올랐다. 하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사안이 생겼다. 미네소타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오마르가 머리에 히잡을 둘렀기 때문이다. 의사당 내에선 모자를 쓰거나 머리에 무엇을 둘러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바꾸어야 했다. 오마르는 하원에서 히잡을 착용한 최초의 여성이 됐다. 미시간의 티라입과 미네소타의 오마르는 435명의 미 하원의원 중에 단둘밖에 없는 무슬림의원이기도 하다. 이들은 감히 누구도 언급하지 못했던 유대계의 자본을 동원한 시민 로비에 관해서 거침없이 비판했고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지와 지원에 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오마르 의원이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협의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동안의 금기를 깼다. 유대계를 비판하면 선거에서 여지없이 불이익당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더구나 AIPAC의 미움을 사면 곧장 낙선이란 공식도 이들의 발언을 막지 못했다. AIPAC은 이스라엘을 위한 유대계 시민로비 조직이다. 워싱턴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을 빗대어서 전문가들이 ‘신의 조직’이라고 부르는 AIPAC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주당으로 들어오는 유대계 정치자금에 긴장한 민주당 지도부가 이들을 달래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다. 당연히 유대계와 이스라엘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7일 미국 하원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및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거짓상황을 유포한 혐의로 팔레스타인계 민주당 의원인 티라입 의원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찬성 234 반대188로 가결했다. 거의 모든 공화당 의원과 22명의 민주당 의원이 찬성했다.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22명의 민주당 의원 중에 최소 14명이 지난해 중간선거 때에 AIPAC으로부터 최소한 25만 달러에서 최대 90만 달러를 받았다. 공화당 역시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AIPAC은 ‘이스라엘을 위한 민주다수당(DMFI)’이라는 홍보회사를 통해 친이스라엘 후보들의 캠페인광고를 펼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AIPAC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하고 휴전을 촉구하는 의원들을,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지하는 진보적인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미 전역의 유대인들을 통해서 거둬들이고 있다. 2024년 선거를 겨냥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뉴스를 장악하면서 AIPAC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19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슈머 원내대표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AIPAC에 속한 기부자들로부터 캠페인 기부금 9만5000달러를 받았다. 그는 원내대표의 이름으로 “우리는 테러단체 하마스의 극악무도한 공격을 규탄한다”는 특별성명을 내기도 했다. 뉴저지의 한인들과도 절친한 조쉬 갓하이머 하원의원은 지난달 2일 하원을 통과한 이스라엘 140억 달러 지원패키지를 주도했다. 2022년 선거에서 갓하이머 의원은 AIPAC에 소속된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총 21만7000달러를 받았다. 하원 외교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텍사스의 마이클 맥콜과 외교위원회 간사인 민주당 소속 뉴욕의 그레고리 믹스 의원은 지난 10월 25일 친이스라엘 하원결의안을 제안했다. 마찬가지로 이 두 의원도 AIPAC의 후원을 받았다. 미시간의 헤일리 스티븐슨 의원은 지난 10월 하마스를 비난하는 또 다른 결의안을 제안하고 추진했다. AIPAC은 2022년 선거에서 헤일리 스티븐슨의 상대 후보인 전 하원의원 앤디 레빈을 공격하는 데에 34만 달러를 지출했다.

AIPAC, 친이스라엘 후보 캠페인광고

2024년 미 대선을 앞두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민감한 변수로 확대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어려워질 때마다 다리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헌신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더구나 바이든은 오랫동안 자신을 네타냐후 총리의 친구로 여겨왔으며 최근에 그는 이스라엘 총리와의 대화에서 “시온주의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유대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시온주의자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지원을 확대했다. 그런데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을 지지한 MZ세대 유권자들은 연일 가자지구 휴전을 요구하면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2020년 내내 미 전역을 휩쓴 ‘BLM(흑인생명도 중요하다)운동’을 이끌었던 다양한 진보적인 시민운동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적지 않은 유대계들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반대하고 나섰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에 대한 젊은이들과 아랍계 미국인들의 지지가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층의 표심과 선거자금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바이든 캠프가 엉거주춤하게 보인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강원 춘천 출신.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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