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망 중립성 지켜야” vs “과도한 비용 요구”…사용료 잣대 시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9호 13면

‘망 사용료’ 논란 재점화

아마존이 운영하는 글로벌 1위 인터넷 게임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6일 돌연 한국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망 사용료’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트위치는 “내년 2월 27일부로 한국에서 사업 운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며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네트워크 수수료(망 사용료)가 10배 더 높아서 사업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트위치는 지난해에도 망 사용료 부담을 이유로 한국에서 동영상 최대 해상도를 줄이고,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중단했다.

유튜브는 8일 광고 없이 시청하는 프리미엄 서비스의 국내 월간 구독료를 기존 1만450원에서 1만4900원으로 42.6% 인상했다. 유튜브는 물가 상승을 이유로 꼽았지만 관련 업계는 유튜브가 향후 망 사용료 지급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9월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3년 반가량 이어왔던 망 사용료 관련 법적 분쟁을 마무리(양측이 제기했던 소송 모두 취하하는 데 합의)했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 일부를 SK브로드밴드에 비공식적으로 지불하기로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망 사용료는 트위치·유튜브·넷플릭스 등 콘텐트 제공 사업자(CP)가 SK브로드밴드 등 통신 사업자(ISP)의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비용이다. CP의 콘텐트가 온라인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려면 일정 시간 데이터가 네트워크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예상보다 많은 데이터가 몰리면 통신 속도가 떨어지거나 서비스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ISP로선 이 같은 트래픽(Traffic) 폭증이 네트워크 증설 등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ISP가 CP에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이유다. 반면 CP는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 “다른 국가에 비해 ISP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한다”며 맞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무선통신 트래픽은 2015년 12월 18만9001TB(테라바이트)에서 지난해 12월 97만5189TB로 7년 사이 5배 증가했다. 코로나19 등에 따른 소비 환경 변화와 5세대 이동통신(5G)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온라인 동영상 수요 급증과 관련이 깊다. 네트워크 솔루션 업체 샌드바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65.9%는 동영상에서 비롯돼 전자상거래(5.8%) 등을 압도했다. 실제 지난해 10~12월 기준 국내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 1위는 유튜브를 앞세운 구글(28.6%), 2위는 넷플릭스(5.5%)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보유한 메타(4.3%)까지 포함하면 동영상 중심의 해외 기업 세 곳이 1~3위인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국내 양대 포털 네이버(1.7%)와 카카오(1.1%)는 1%대 점유율로 4~5위에 그쳤다. 이들 중 연간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곳은 메타·네이버·카카오, 올해 합의에 따른 지급 추정까지 포함하면 넷플릭스도 여기에 해당된다. ISP 업계에선 “톱5 중 가장 많은, 국내 트래픽의 4분의 1 이상을 유발하는 구글도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사이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구글이 망 사용료 부담을 이유로 각종 서비스 가격을 추가로 올리거나, 트위치처럼 서비스 축소 또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사업 철수에 나설 경우 피해를 입는 쪽은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우리가 ISP에 매월 돈을 내고 있는데 왜 CP가 추가로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느냐”며 ‘망 중립성’ 원칙(ISP가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모든 사업자와 사용자의 트래픽을 차별 없이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특정 CP만 망 사용료를 안 낼 때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ISP가 네트워크 증설 등의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 등을 우려한다. 트위치와 유튜브의 최신 동향을 계기로 이런 논란이 다시 거세진 가운데 현재 국회에 8개나 계류된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의 처리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CP의 망 사용료 지불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파장도 그만큼 클 전망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대규모 연산 처리 작업을 필요로 하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앞으로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 양의 트래픽이 발생할 것”이라며 “네트워크의 유지·관리·보수가 한층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내년 출범할 22대 국회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이 빅테크의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를 추진 중인 유럽연합(EU)처럼 정책을 펼친다면 망 사용료에 대한 체계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주요 기업은 기밀유지협약(NDA)에 따라 망 사용료를 정확히 얼마씩 주고 받는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트위치는 “한국은 망 사용료가 다른 나라보다 10배 비싸다”고 주장하는데, 이 같은 주장이 맞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ISP는 사실무근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데이터를 발생시킨 발신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발신자 종량제’를 채택하고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편이라는 게 정보기술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CP가 국내에서 수익 구조 등 객관적 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적절한 망 사용료를 책정·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원칙을 정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