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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류 첫 화석연료 전환 합의, 남은 숙제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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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호 30면

생명의 원소에서 기후위기 주범이 된 탄소

COP28 폐막, 의장국 UAE의 그린워싱 논란

다음 회의선 ‘화석연료 퇴출’ 논의 진전해야

탄소는 생명의 원소다. 지구상 모든 생물은 탄소 또는 탄소 화합물로 이뤄져 있다. 동·식물의 생몰과 광합성, 해수의 증발과 용해 등의 과정을 거치며 탄소는 지각과 대기, 해수 사이를 순환한다. 지구의 생명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유는 ‘탄소 순환’을 통해 동적 평형 상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이를 급격히 깨뜨리고 있다. 그 결과가 기후위기다.

엊그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폐막한 유엔기후변화협약 28차 당사국 총회(COP28)의 쟁점은 화석연료 의존을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화석연료는 생물의 잔해가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생겨난 에너지원으로 주성분이 탄소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탄소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지구 시스템이 붕괴한다. 온실가스의 증가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 위협을 가한다.

특히 올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뜨겁고 역대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핵심 안건으로 내세웠다. 최종 합의문에선 ‘퇴출’ 대신 의미가 다소 약한 ‘전환(transitioning away)’이란 표현이 담겼지만, 1995년 총회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국제사회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 출범으로 개발도상국이 꾸준히 제기해온 ‘기후 정의(正義)’ 이슈가 현실화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았던 선진국의 책임을 명시하고, 홍수·폭우 등 기후위기 피해가 큰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국제사회가 합의했다.

그러나 총회 내내 불거진 산유국들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은 문제다. 지난해 이집트에 이어 올해 의장국인 UAE도 대표적 산유국이다. 의장 아흐마드 자비르는 심지어 UAE 국영석유회사의 대표다. 지난달 한 행사에서 그가 “화석연료 퇴출의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화석연료 퇴출에 강하게 반발했고, 내년 총회 역시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려 산유국의 ‘그린워싱’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전년 대비 탄소 배출량이 대폭 늘어난 인도(8.2%)와 중국(4%) 등도 화석연료 감축을 반기지 않는다. 석탄 화력발전 비율이 41.9%(2021년)에 달하는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특히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기후행동네트워크가 수여하는 ‘오늘의 화석상’ 수상국가 중 하나로 뽑혔다. 세계 9번째 탄소배출국가지만, 기후대응 순위는 최하위권인 ‘기후 악당’임을 인증받은 셈이다.

영국의 왕립학회장을 지낸 마틴 리스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기후 논쟁에는 정치와 비즈니스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어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이들은 더 나은 과학을 요구하기보다 과학 자체를 비난한다”고 했다(『온 더 퓨처』). 기후위기는 과학적 예측에 따라 이미 ‘정해진 미래’지만 현실 앞에 놓인 이해관계와 물질적 욕구가 합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멀게 한다.

지금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아들·딸이 피해본다. 시민들이 ‘눈앞의 이익’과 ‘일상의 편리’에 종속되고 ‘미래의 진실’에 눈 감으면 정치인도 신경쓰지 않는다. 기후 대응에 적극적인 지도자를 뽑고, 이들이 모여 범국가적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른이 아이의 미래를 훔친다”는 그레타 툰베리(기후행동가)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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