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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양고기 훠궈 솬양러우(涮羊肉)의 정치학

중앙일보

입력

솬양러우는 얇게 썬 양고기를 끓는 육수에 흔들어 익혀 먹는 요리로 훠궈(火鍋)의 한 종류다. 셔터스톡

솬양러우는 얇게 썬 양고기를 끓는 육수에 흔들어 익혀 먹는 요리로 훠궈(火鍋)의 한 종류다. 셔터스톡

솬양러우(涮羊肉)는 북경의 전통 겨울 음식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가 전골 같은 뜨거운 국물음식을 찾는 것처럼 예전 북경에서는 북풍이 불어올 무렵, 솬양러우 전문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솬양러우라고 하니까 중국 현지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게 뭔가 싶지만 실은 우리한테도 이래저래 익숙한 요리다. 한자로 물에 담가 흔들 쇄(涮)와 양고기(羊肉)를 합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얇게 썬 양고기를 끓는 육수에 흔들어 익혀 먹는 요리로 훠궈(火鍋)의 한 종류다. 흔히 징기스칸 요리나 샤브샤브의 원조 음식으로 일컬어지고, 또 청탕홍탕으로 나누어 먹는 태극훠궈, 원앙훠궈 중 청탕의 원조가 된다.

낯선 중국어 이름과 달리 음식 자체는 우리한테도 친근한데 요리가 생겨난 유래 또한 익숙하다. 징기스칸 혹은 그 손자인 원 세조, 쿠빌라이가 대군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섰다. 마침 전투가 없었기에 부대가 양고기를 먹으려고 솥을 걸어 물을 끓였다. 이때 적군이 기습해 왔다. 급한 김에 썬 양고기를 끓는 물에 흔들어 살짝 익혀 먹고는 서둘러 적군과 맞서 싸웠다. 이렇게 먹었던 고기가 너무나 맛있었기에 훗날 솬양러우로 발전했고 여기서 전골과 징기스칸, 샤브샤브 등 요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얼핏 들어도 지어낸 말 같지만 따져보면 더더욱 엉터리 같은 소리다. 이를테면 징기스칸이나 샤브샤브는 20세기 일본에서 생겨난 음식이고 전골은 19세기 조선에서 발달했다. 양고기 훠궈나솬양러우 또한 징기스칸 시대는 물론이고 전쟁 중 생겨난 음식은 아니라는 것이 음식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터무니없는 유래설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받아들일 부분은 있다. 양고기 훠궈가 한족이 아닌 몽골족을 비롯한 회족(回族) 등 양고기를 주로 먹는 북방민의 음식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 입장에서 그게 뭐가 중하냐 싶겠지만 솬양러우, 양고기 훠궈가 퍼진 내막을 알아보면 중국을 이해하는데 나름 도움이 된다.

먼저 북방민족 음식인 양고기 훠궈가 북경 등지에 퍼진 것은 예전의 여진족, 다시 말해 만주족이 중원을 지배했던 청나라 때다.

왜 하필 청나라였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다. 양고기 훠궈가 이 무렵 발달한 음식인지 혹은 청나라 때부터 문헌에 집중적으로 보인 것인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훠궈 먹는 풍속은 청 문헌에 자주 나온다. 건륭제 때 북경 등지의 세시풍속을 적은 『제경세시기승(帝京歲時紀勝)』에 설날 무렵인 원단이면 북경에서는 훠궈를 먹는다고 나온다. 청나라 초기부터 양고기 훠궈가 북경에서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구도백화(舊都百話)』에도 양고기 훠궈는 세시 무렵이 제일 맛있으며 북방 유목민의 풍속에 따라 먹는데 추울 때가 별미라고 나온다.

양고기 훠궈 중에서도 고기를 얇게 썰어 끓는 육수에 흔들어 먹는 솬양러우는 청나라 후반인 19세기 중반, 북경에 퍼졌다. 이유는 솬양러우가 원래는 청나라 궁중요리였기 때문이다.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양고기 훠궈집 주방장이 청 황실에서 궁중요리를 담당했던 환관을 매수해 궁중비법의 양고기 훠궈 요리법을 전해 받았다. 그렇게 대중에서 선보인 음식이 솬양러우인데 시중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지금도 북경에서 영업 중인 원조 솬양러우 전문점 둥라이순(東來順)이 생겨난 유래다.

정리하면 양고기 훠궈는 몽골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의 음식이고 같은 북방민족인 예전의 여진족, 즉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 때 북경에 퍼졌다. 특히 솬양러우는 궁중비법 요리였으니 청 황실에서도 즐겨 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청나라였을까? 만주족 역시 같은 북방민족이니 양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일까?

사실 여진족인 만주족은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의 근거지인 만주는 울창한 삼림 지역이다. 양이 풀을 뜯어 먹고 자랄 초원이 아니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양고기를 즐겨 먹을 수가 없다. 만주족은 대신 우거진 숲에서 도토리 등을 먹고 큰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 이런 청나라에서 왜 양고기 훠궈가 유행했고 청 황실에서는 솬양러우를 발전시켰을까 싶은데 나름 이유가 있다.

솬양러우를 비롯한 양고기 훠궈는 청나라에서 몽골 왕족과 사신 등을 대접할 때 차렸던 요리다. 청 황실은 몽골 왕족과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었고 해마다 몽골 왕족 친족을 초청해 잔치(蒙古親藩宴)를 열어 이들을 대접했다. 몽골에서 사신이 오면 구백연(九百宴)이라는 잔치로 이들을 환대했으니 이때 준비했던 요리가 양고기 훠궈, 솬양러우였다.

청나라가 우호적인 몽골 부족을 이렇게 우대했던 이유는 만리장성 너머의 북방을 안정시키는 한편 몽골과의 연대를 통해 인구의 대부분인 한족을 통제,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중국에서 즐겨 먹는 솬양러우, 양고기 훠궈의 발달 이면에는 청나라 때 만주족과 몽골족, 그리고 한족의 역학 관계가 얽혀 있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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