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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만에 돌아온 코트… 흥국생명 박혜진은 씩씩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IBK기업은행전에서 복귀전을 치른 흥국생명 박혜진. 인천=김효경 기자

14일 IBK기업은행전에서 복귀전을 치른 흥국생명 박혜진. 인천=김효경 기자

부상의 악령을 떨치고, 16개월 만에 선 코트에서 환하게 웃었다. 흥국생명 세터 박혜진(21)이 복귀전에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흥국생명은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2(26-24, 22-25, 25-18, 23-25, 18-16)로 이겼다. 흥국생명은 이날 승리에 힘입어 현대건설을 제치고 다시 1위로 올라섰다.

흥국생명은 이날 경기에서 주전 세터 이원정이 결장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김다솔이 아닌 박혜진을 선발로 낙점했다. 구단 관계자들조차 박혜진이 선발이라는 것에 놀랐다. 올 시즌 첫 출전이 선발이었기 때문이다.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사인을 내는 흥국생명 세터 박혜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사인을 내는 흥국생명 세터 박혜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박혜진은 2020년 1라운드 5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2년차인 2021~22시즌 29경기에 출전했다. 김다솔과 함께 많은 경기를 뛰면서 성장했다. 코로나19로 출전하진 못했지만,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다. 2022~23시즌에도 많은 출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개막 직전 오른 무릎 연골 파열로 수술을 받아 통째로 쉬었다.

집에서 4개월을 쉬면서 개인 운동을 한 박혜진은 올해 3월에야 재활을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박혜진은 컵대회가 열리기 전부터는 본격적인 팀 훈련에 참여했다. 하지만 3라운드까지 한 경기도 뛰지 않았으나 갑작스럽게 기회를 얻었다. 박혜진은 긴 공백기간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잘 풀어갔다. 2-1로 앞서던 4세트에 흔들리고 5세트엔 경험 많은 김다솔이 코트에 섰지만, 팀이 끝내 승리하면서 팬들에게 밝게 인사할 수 있었다.

박혜진은 "오랜 시간 못 뛰었는데 '다 뛰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경기 전에 감독님이 미리 말해주진 않았다. 다만 며칠 전부터 연습을 많이 했다. 스타팅이란 이야기를 들은 뒤 '자신있게 해야겠구나'라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또 "오늘 경기 마치고 울컥했는데, 참았다. 너무 기뻤다"고 했다.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박혜진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 사진 한국배구연맹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박혜진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 사진 한국배구연맹

박혜진은 이날 외국인 선수 옐레나와는 다소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연경과는 잘 맞았다. 김연경이 올 시즌 최다인 5개의 백어택을 성공시켰다. 중앙 공격도 기회가 될 때마다 썼다. 박혜진은 "사실 언니들이랑 호흡을 맞춘 시간이 길진 않아서 걱정했다. 하면서 맞는 부분도 있었다. 감독님이 항상 세터들에게 주문하는 게 속공과 백어택 사용을 많이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사용했다"고 말했다.

경기 도중 김연경은 박혜진에게 다가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아본단자 감독도 수시로 대화를 나눴다. 박혜진은 "연경 언니가 기술적인 면도 많이 얘기해줬고, 자신없어 할 때 자신있게 하라고 했다. 다른 언니들도 화이팅하라고 해줬다"며 웜업존에 있었던 5세트엔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토스하는 흥국생명 박혜진(왼쪽). 사진 한국배구연맹

1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토스하는 흥국생명 박혜진(왼쪽). 사진 한국배구연맹

박혜진은 국내에 많지 않은 장신(1m77㎝) 세터다. 이날도 블로킹 3개를 잡아내면서 5득점을 올렸다. 박혜진은 "사실 연습할 때는 블로킹이 잘 안 됐다. 장신 세터라는 점을 장점이라고 생각하시니까 더 공격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힘든 재활 기간을 거친 박혜진은 더 강해졌다. 그는 "배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다. 처음에는 저 자리에 없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을 했고, 회복하고 얼른 복귀하는 거에 중점을 맞췄다"며 "재활하는 동안은 울지 않았는데, 수술받기 전까지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어 "수술이 처음이었다. 재활을 했던 언니들이 말씀을 많이 해줬고, 선생님과 팀원들이 격려해줬다. 집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내게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단 한 경기지만, 세터 때문에 고민이 많은 흥국생명에게 박혜진의 도약은 큰 힘이다. 아본단자 감독도 "14개월이나 코트에 없었는데 잘 해줬다. 오늘 경기와 승리가 값진 것 같다"고 했다. 박혜진은 "오늘 경기는 10점 만점에 7점 정도다. 블로킹을 적극적으로 했고, 공격수와 호흡이 맞는 것도 있었다. 더 연습을 많이 해서 뛰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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