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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용인 보도 부인했지만…트럼프 "난 김정은과 잘 지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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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의 13일(현지시간) 보도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내 관점이 완화됐다는 건 지어낸 이야기이자 허위 정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폴리티코가 보도한 대로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목표로 하지 않고 현수준에서 핵을 동결만 해도 제재를 완화해주는 방안은 북한이 노리는 '사실상의 핵보유국' 인정 및 미국과의 '빅딜'을 통한 핵군축이 가능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당장은 '북핵 용인'을 부인하지만,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당 보도를 부인하면서도 "단 하나 정확한 것은 김정은과 잘 지낸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입장에선 미국과의 핵담판에서 실패한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진행해온 핵능력 강화를 통한 몸값 높이기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갈 유인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실제로 미국 조야를 비롯한 일각에선 북핵 문제의 해결이 요원한 상황에서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기 위해 새로운 핵무기의 개발·생산을 중단하는 동결이라도 추진하자는 의견도 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데이비드 생어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2019년 7월 "트럼프 정부서 핵 동결론이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도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스몰딜이 유일한 외교적 해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국제사회 분위기는 '북핵 용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한다면 한국은 물론 일본도 북한의 공격용 핵무기를 머리 위에 올려둔 채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꼽히는 한국과 일본이 한목소리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의 핵군축을 수용한다는 것은 한반도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절대로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적절한 외교적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019년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2019년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시 여전히 김정은과의 파격적인 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전·현직 주미 특파원 모임인 한미클럽은 지난해 9월 발간한 외교·안보 전문계간지 '한미저널 10호'에서 김정은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교환한 27통의 친서 전문을 공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 직후인 2019년 3월 22일자 친서에서 "우리의 만남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위원장님과 저는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며 김정은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가 내년 재선에 성공한다면 김정은과 톱다운(Top-Down)방식의 협상 국면을 다시 열 가능성도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핵 용인' 보도의 사실관계를 떠나 김정은 입장에선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초강경 매파로 꼽히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 등 이전에 존재하던 변수가 사라졌기 때문에 집권한다면 북한과의 협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봉근 세종연구소 방문연구위원은 "북한은 스스로 핵억제력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보고, 경제 발전과 제재 완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를 다시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도 김정은과 친분을 이용해 세계적 난제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과시하기 위해 다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런 미·북 간의 접근 가능성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이용하는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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