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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듣기 거북해도 꼭 알아야 할 꽌시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방점의 위치가 다르다, 서양은 ‘범주’에, 중국은 ‘관계’에 있다.

원숭이와 닭 그리고 바나나의 그림을 보여주고, 서로 연관성이 깊은 것끼리 묶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은 원숭이와 닭을, 중국 학생들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선택했다.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사실은, 미국 등의 서양은 동물이라는 ‘범주’에, 중국은 바나나와 원숭이와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회를 관계주의(關係主義)로 정의하기도 한다(〈어쩌다 한국인〉 하태균). 중국의 꽌시(關係)는 영어로는 relationship, link 또는 human-network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영어를 포함해 다른 어느 나라의 언어로도 정확한 의미전달이 불가능할 정도로 특별하다고 한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중국식 발음을 따서 guan xi(꾸안 시)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관계’와 중국의 ‘꽌시’는, 한문으로 같은 글자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사용되는 관계(혹은 꽌시)의 본래 의미는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꽌시’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여기고, 심지어 무조건 거부하는 경향도 있다. 사실, ‘꽌시를 만든다’는 말은 때로는, 우리말로 ‘친구를 사귄다’ 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중국식 모임의 특징은, ‘여럿이’와 ‘자주’, 그리고 ‘번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별한 모임을 제외하면 두세 명이 – 개인적 경험으로는, 많아야 다섯명을 넘지 않는 듯하다 - 오붓하게 만나는 듯하다. 아무 때나 예닐곱 명이 함께 만나서 떠들며 식사하는 모습은 별로 없다. 사업으로 인해 처음 만나게 되는 경우라면, 커피를 마시는 정도도 괜찮다. 첫 만남에 굳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더라도, 술을 취하도록 마신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친구 사이에도 ‘서로 바쁘다 보니’ 저녁을 함께하는 일이 일 년에 몇 번 안 된다. 진작에 정했던 날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변경이 되고, 오늘 갑자기 시간이 생겨도 ‘번개’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이에 비해, 중국인들의 모임은 사뭇 다르다. 우선, ‘여럿이’ ‘자주’ 만난다. 출장이 없는 경우, 한 친구를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그럴 수가? 둘이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첫날은 원래 둘이 만나기로 했는데, 둘 중 하나가 자기 친구를 데려오고, 새로 온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들)를 불러들인다. 그렇게 만나서 얘기하다가, 누군가가 “내일은 (또는 날짜를 정하며) 내가 초대하겠다”고 제안한다. (우리와 비교하면, 중국인들의 이런 초대는 빈말이 아니다). 자기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며 약속을 만들어 낸다. 다음날 또 만나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

다음 약속을 정하는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이라도, 반드시 참석해야 할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모임의 시작이 되었던 내 친구는, 다음날 식사 장소에 웬만하면 참석한다. 자리가 파할 때까지 함께 하기도 하지만, 잠깐 와서 얼굴만 비치기도 한다. 서로가 부담이 없다. 다만, 비록 함께하지는 못해도 관심 있다는 성의를 보이려고는 한다. (그래서 참석을 못 하는 이들은, 이런저런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두세 명이 조촐하게 시작한 모임에서, 하룻밤에 10명을 만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이런 만남이 하룻밤에도 몇 번 반복되기도 한다. ‘만나서 사귐’에 능률을 따진다면, 중국인들의 만남은 상당히 고효율이다. 바로 꽌시의 특징 중 하나인 ‘확장성’이다.

우리의 모임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서로 공통분모가 있어도, 어느 모임에 ‘추가’로 초대하려면 고려할 게 많다. 별생각 없이 편하게, 다른 참석자에게 문의 없이 초대하면 곤란하다. 미리 정해지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놀라는 사람도 있고, 불편하게 여기는 이가 있다. “그 사람을 왜 불렀냐?”는 핀잔을 받기도 한다. 중국은 ‘매우 개방적’이다. 미리 말할 필요 없다. 다른 친구들을 소개하지 않고, 늘 나 혼자만 참석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친구의 친구도, 친구다. 친구의 친구에게도 기꺼이 친구처럼 돕는다. 

2010년 중국 광둥성 광주에서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을 평창으로 유치하기 위해 삼성도 전력을 쏟던 때였다. 투표권을 가진 아시아 지역의 IOC 위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광주 아시안 게임은 그래서 더욱 중요했다. 갑작스럽게 광주로 가서 행사준비를 지원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있었다. 광주에는 그 당시 지인(혹은 꽌시)이 없었다. 북경의 친구(인맥 혹은 꽌시)가 자신의 친구 A를 소개해주었는데, A는 나름대로 특색 있는 식당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이번 한 주 매일 저녁을 이 식당에서, 나와 함께 식사하자”고 한다. A는 그다음 날 저녁부터 ‘필자가 언급한 거의 모든’ 인사들을 식당으로 불러내 주었다. 그렇게 매일 저녁 여러 방을 번갈아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면서, 수십명의 중요 인사들과 교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방 저 방 다니며 식사하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서는 결례가 되지 않는다. 한편, A는 비용은 물론 식대조차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반년 기간의 출장을 마치고 광주를 떠날 때, 회사의 특별한 기념품을 하나 주었다. 소위 사례라면 그것이 전부였다. A가 그토록 전력으로 필자를 도운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북경에 있는 내 친구의 부탁이었기 때문이다)

꽌시를 만드는 방법 – 서로 인정을 빚지며, 갚아가며, 그렇게 깊어진다.

선전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가 그 회사의 고위층이었다. 시간이 있으면 보자고 했더니, “늦은 저녁에 합류할 테니, 먼저 식사하고 있어라”며 반가워한다. 그는 8시가 넘어 식당으로 왔다. 외지 출장 중이었는데, 어렵게 비행기 표를 구해서 왔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다시 출장지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며 웃는데, 기가 막혔다. 10여 년이 지난 뒤에 이 친구가 한국에 왔다고 해서, 필자도 밤 11시에 그가 묵는 호텔에 달려가 로비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헤어졌다. 禮尚往來(예의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서로 인정을 빚지고, 그 빚을 서로 갚아가면서, 꽌시도 깊어진다.
有事辦事 沒事吃飯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밥을 먹는다)
‘I 자(字)형 모임(아는 사람끼리만의 모임)’ 과   ‘T자형 모임(다양한 사람의 모임)’
또는, ‘동종(同種. 폐쇄형) 모임’과 ‘이종(異種. 개방형) 모임’

일이 있어서 만나기도 하지만, 당장 일은 없는데도 만나는 경우가 참 많다. “(처음 만났지만, 통하는 게 있다) 내일부터 나하고 딱 일주일만 술 마시자!”라는 친구도 있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만나는 것은 아니다. ‘T자형’ 모임이란, ‘I (아는 사람과의 ‘깊어지는’ 만남)’와 ‘ㅡ(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망을 ‘넓히는’ 만남)’의 결합을 말한다. ‘T자형’의 중국식 모임을 통해, 아는 친구와는 더 가까워지고, 새로운 친구는 점점 더 많아진다. 이런 ‘T자형’의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꽌시가 깊어 지고, 넓어진다. 이에 반해, 우리는 아는 이끼리만(혹은 동종업계나 동료만) 만나는 ‘I 자형’ 만남이다.

중국 친구들이 만나서 밥을 먹자고 할 때, 필자는 묻지 않았다. 초대해주는 것도 좋은 일인데, “무슨 일이냐?” 혹은 “누가 참석하냐?” 등을 굳이 따지고 물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참석한 모임에서는, 항상 처음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언제부터인지 불편함이 없어졌다. 처음 만나는 친구는 그다음에는 익숙한 친구가 되고,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중국 친구(인맥 또는 꽌시)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필자도 때로는 사전에 설명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냥 “오늘 (혹은 날짜를 정해서) 시간 되면 밥 먹자”라고 한다. 이렇게 대뜸 요청하면 대부분 ‘우리의 예상과 달리’ 거절하지 않는다. “너와는 아무 때나 먹는 게 밥이지. 나 오늘 중요한 일이 있는데, 혹시 무슨 일이냐?”라고 묻는 이들도 가끔 있다. 이런 경우, 바빠서 밥을 같이 못 먹어도, 일에는 도움을 주었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밥을 먹는다”는, ‘한가할 때 만나서 밥을 먹자’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일이 있든 없든, 자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일단은 만나서, 일이 있으면 함께 상의하고, 일이 없으면 식사를 같이하면서 정(情)을 나눈다. 그래서 꽌시가 되어 간다. ‘I 자형’ 인 우리나라 모임의 구성원은 ‘아는 이들끼리’ 혹은 동종업계나 골프 등 취미에 있어서 공통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의 모임에 가 보면, 참석자의 수도 많지만, 업종도 나이도 경력도 정말 다채롭다. 개방적이다. 인적 관계망이 쉽게 넓어진다. ‘T자형’의 중국식 모임은, 꽌시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준다.

因噎废食(인열폐식. 목이 멜까 염려되어, 아예 먹지를 않는다)

꽌시가 부정적이지 만은 않다. 나쁘게 이용하는 소수(少數)가 문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주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는 미풍양속이다. 내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보고 못 본 척하고도 마음이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쁜 목적과 나쁜 방법으로 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나쁘다. 공정하지 않게 ‘오직 내 주위만’ 챙기는 인정은 관계주의의 나쁜 부분적인 면이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에서는, 녹록지 않은 형편에서도 이웃 간의 끈끈한 정이 넘친다.

골목 주민들끼리 서로 보살펴주는 인정을 보고 ‘꽌시주의’라 비난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꽌시도 이런 좋은 면이 당연히 있다. 좋은 꽌시를 맺고 있는 중국인 친구가 있다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렇게까지?”라고 감격할 정도로 도움을 받아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상해에서 코로나를 제대로(?) 겪었다. 이러다가 코로나가 아니라,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멘붕의 시간이 있었다. 이웃들과 많은 나눔을 통해 견뎌낼 수 있었다. 그 이웃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었지만, (물론 나쁜 이들도 있었지만) 좋은 중국인들도 많았다.

居安思危(잘 지낼 때, 어려움이 닥칠 것을 대비하라) 꽌시는 미래를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이다. 

꽌시를 나쁘게 사용하는 이들이 중국에는 많아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정말 많고, 미국을 포함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다. 나쁘게 사용되는 꽌시 역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말씀이 아니다. 다만, 중국인들과의 어울림에서 나쁜 면 만을 보고 듣고, ‘꽌시’를 무조건 혐오한다면 현명하지 않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만남을 유지하고, 雪中送炭(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에게 땔감을 보내다)하는 감정의 교환, 인정의 교환은 관계주의 사회의 미덕이다. 꽌시는 어려운 시기와 닥쳐올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이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국가는 너무 커서 (어려울 때) 도움이 안 되고, 개인은 너무 작아서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꽌시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파벌주의 즉, ‘끼리끼리 문화’가 생긴다. 상대방은 여럿인데, 나는 혼자라면 매사 불안하다.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뭐든 두드린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나쁜 사람들로부터 망치를 뺏으면 될 일이지, 망치를 빼앗은 후 아예 버린다면, 어리석다. 남들이 모두 망치를 사용하는데, 나 혼자서 맨손으로 못을 박으려 한다면, 무모하다.

글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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