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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절실한 오타니, 연봉 97%는 10년 뒤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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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오타니 쇼헤이는 LA 에인절스에서 우승 가능성이 큰 LA 다저스로 팀을 옮겼다. 오타니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합성사진. [LA다저스 홈페이지 캡처]

오타니 쇼헤이는 LA 에인절스에서 우승 가능성이 큰 LA 다저스로 팀을 옮겼다. 오타니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합성사진. [LA다저스 홈페이지 캡처]

총액 7억 달러(약 9240억원)를 받는 조건의 계약을 했지만, 내년 연봉은 200만 달러(26억원)다. 총액의 97%인 6억8000만 달러는 10년 뒤부터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최근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계약한 오타니 쇼헤이(29·LA 다저스)는 왜 스스로 이런 조건을 제시했을까.

미국의 디 애슬레틱은 12일(한국시각) “오타니는 7억 달러 중 6억8000만 달러(약 8941억원)를 계약 기간 종료 후에 받기로 했다. 2034~43년까지 무이자로 나눠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타니는 지난 10일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 계약 내용 중에 ‘지급 유예(deferrals)’ 조항이 있다는 건 이미 공개됐다. 하지만 사실상 연봉의 대부분을 10년 뒤에 받기로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메이저리그에서 대형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 구단과 합의에 따라 지급 유예 조항을 넣는 건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급 유예 금액은 대체로 10~20% 수준이고, 많아도 50%를 넘지 않는다. 무키 베츠도 2020년 다저스와 12년 총액 3억6500만 달러(4838억원)에 계약했는데, 그중 3분의 1 정도인 1억1500만 달러(1513억원)를 나중에 받기로 했다.

그런데 오타니의 계약 내용은 충격적이다. 오타니가 다저스에서 뛰는 10년간 실제로 받는 금액은 2000만 달러(263억원)에 불과하다. 1년 연봉은 200만 달러다. LA 에인절스에서 뛰었던 2023시즌 오타니의 연봉은 3000만 달러(395억원)였다.

오타니가 연봉을 크게 줄이면서까지 LA 다저스와 계약한 건 우승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엔 샐러리캡(연봉합산제한)이 없지만, 사치세(일정 기준을 넘어선 구단에 제재금을 부과하는 것) 제도가 있다. 그러나 사치세는 계약 총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지급 유예 조항을 넣는다 해도 무조건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선 추후에 연봉을 지불하기 때문에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더 적은 돈을 쓰는 효과도 있다. 오타니의 계약은 이율과 화폐가치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10년 4억6000만 달러(6056억원)라고 볼 수 있다. 팀 동료였던 마이크 트라우트의 12년 4억2650만 달러(5616억원)와 비교하면 큰 격차는 아니다.

오타니 입장에서 ‘지급 유예’ 계약은 손해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먼저 제안한 건 오타니다. 에인절스 시절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던 오타니는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계약으로 드러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일본 선수들은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오타니는 특히 그런 선수”라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2023년 기준 약 490만 달러다. 그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을 받는 데도 오타니는 금전적으로 전혀 아쉽지 않다. 포브스에 따르면 오타니는 광고·마케팅 등으로 얻는 야구 외적인 수입이 연평균 3500만 달러(461억원)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재우 위원은 “오타니가 다저스에서 화려한 멤버들과 우승을 하면 자신의 마케팅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저스는 오타니에게 줄 돈을 다른 선수에게 쓸 수 있다. 선발투수 영입이 필요한 다저스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의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오타니는 팔꿈치 수술을 받았기에 내년엔 타자로만 뛸 수 있다. 송재우 위원은 “야마모토를 스카우트하려면 큰돈이 드는데 오타니 덕분에 다저스도 여유가 생겼다. 현재 영입전에선 뉴욕 양키스가 앞선다고 하지만, 오타니가 ‘다저스에서 같이 뛰자’고 하면 야마모토도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저스로서도 큰 도박인 건 사실이다. 오타니의 계약이 끝난 2034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68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 위원은 “그만큼 다저스가 우승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오타니의 전성기인 향후 5~6년 동안 적어도 2~3차례는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라야 본전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치세(Luxury tax)=메이저리그에서 쓰는 연봉 합산 제한 규정. 1997년부터 적용돼 일정 금액을 초과할 경우 제재금을 MLB 사무국에 납부한다. 2023시즌엔 9개 팀이 초과했고, 2024시즌 사치세 기준은 2억3700만 달러(3114억원)다. 다저스는 오타니와 지급 유예 계약을 하면서 2400만 달러의 여유분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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