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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직원 127명, 청년 지원금 41억 타냈다…공무원까지 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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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미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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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때 청년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쓰인 국가보조금 수십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붙잡혔다. 일선 지자체 간부급 공무원이 범행을 돕고, 일당이 운영하는 업체에 가족을 취업시켜 급여 수천만원을 타내기도 했다.

코로나19 청년 취업 보조금, 업자 배불렸다

부산경찰청 반부패ㆍ경제범죄수사대는 데이터 구축 업체를 운영하며 코로나19 시기 허위 서류를 이용해 창ㆍ취업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보조금 관리법 위반)로 업체 대표 A씨(30대)와 회장 B씨(60대)를 구속하고, 직원 등 관련자 7명을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2020년 5월부터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 4곳이 주관하는 보조금 지원 사업 19건을 따내고, 20대 청년 127명을 ‘유령 직원’으로 올려 지난해 말까지 보조금 4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A씨는 2016년 대학생 창업동아리 관련 활동을 하며 B씨를 알게 됐다. 이들은 코로나19 시기 실직과 취업 불안을 겪는 청년을 대상으로 인건비 보조금 지원 사업이 많다는 점을 노려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따낸 보조금 지원 사업 19건은 장애인을 위한 보행 내비게이션 구축 등 대부분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A씨 일단 범죄 개요도. 부산경찰청

A씨 일단 범죄 개요도. 부산경찰청

데이터 축적과 프로그램 제작 등 분야에 청년을 채용해야 하지만, A씨 등은 지인과 그 가족 명의만 빌려 직원 127명을 채용한 것처럼 꾸미고 인건비 보조금을 타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명의를 빌려준 이들은 20대 초중반 청년이었다. A씨가 계좌로 인건비를 입금하면, 가짜 직원은 명의 제공 수수료로 1인당 30만원을 제외한 금액을 다시 A씨 차명계좌로 보냈다. A씨가 입금한 명세는 보조금을 받아 정상적으로 급여를 준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데 이용됐다.

보조금 사업을 발주한 정부 부처는 회계법인에 위탁해 보조금 집행 명세를 확인했다. 하지만 A씨 일당이 급여 지급 명세와 출근부 등을 미리 꾸며놓은 데다 점검이 보통 1년에 한 번에 그쳐 적발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당은 빼돌린 금액 가운데 21억원을 현금으로 찾아 숨기거나, 부동산 매입 등에 사용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다만 명의를 빌려준 가짜 직원들은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인 점, 빌려준 명의가 범죄에 악용되는 걸 정확히 알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범행 도운 공무원은 처자식 취업

A씨 일당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유령 직원 관련 허위 서류 등 증거물을 확보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A씨 일당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유령 직원 관련 허위 서류 등 증거물을 확보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의 한 구청 일자리 창출 부서에서 근무하는 6급 공무원 C씨(50대)도 범행을 도왔다. 경찰은 A씨 업체가 따낸 정부 보조금 사업 19건 중 5건은 C씨가 확약서를 써준 것으로 파악했다. 확약서에는 ‘A씨 업체가 공모 사업에 참여해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우리 지자체가 계약해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이 같은 확약서가 공모를 따내는 데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봤다. 이후 A씨 일당이 운영하는 업체에는 C씨 아내와 두 아들이 직원으로 이름을 올려 급여 68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가족에게 준 급여를 뇌물로 판단해 C씨를 입건했다.

영세 업장에 ‘불법수급’ 알선 브로커도 구속

경찰은 이외에도 2020년 9월부터 고용노동부가 지급하는 청년 채용 보조금을 부정으로 받을 수 있게 알선한 혐의(고용보험법 위반)로 브로커 D씨도 구속했다. D씨는 직원 이름을 가짜로 만들어 코로나19로 소득이 준 영세 사업자를 돕는 보조금 1억5000만원을 부정하게 타내고, 이런 수법을 다른 영세 사업장 운영자 등 30여명에게 건당 4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알려준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부정하게 챙긴 보조금은 13억7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중용 부산경찰청 반부패ㆍ경제범죄수사1계장은 “추징 보전과 과징금을 통해 부정하게 타낸 보조금을 환수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며 “관계 부처에 현장 실사 등 보조금 집행 감시를 강화하도록 건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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