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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90㎞ 날아 전차 부수는데…자폭드론 210종 중 한국산 '0'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데이비드 버거(David H. Berger) 당시 미국 해병대 사령관은 ‘자폭드론’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보병이 처음으로 포병 사거리 너머 표적까지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게 됐다. 지상군의 손에 항공력(power of air wing)이 주어진 것이다.” 보병이 공격헬기ㆍ공군기를 보유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 바드 대학(Bard College)의 드론 연구센터는 “세계 각국의 자폭드론이 2017년 8개국ㆍ35종에서 2023년 32개국ㆍ210종으로 급증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스위치블레이드(Switch Blade) 600 자폭드론. AeroVironment

스위치블레이드(Switch Blade) 600 자폭드론. AeroVironment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사상 ‘자폭드론’이 가장 대규모로 운용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자폭드론은 피닉스 고스트(Phoenix Ghost)ㆍ스위치블레이드(Switchblade)ㆍ알티우스(Altius) 등이다. 러시아는 이란의 샤헤드(Shahed)-136을 대량 도입했으며, 자국산 란셋(Lancet)의 생산량도 3배까지 증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의 자폭드론은 이러한 세계적인 발전 추세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초의 자폭드론은 적 방공 레이더 파괴용으로 개발

1989년 등장한 최초의 자폭드론 이스라엘의 하피(Harpy)는 적 방공 레이더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군이 베카 계곡의 공중전(1982년)에서 적 방공체계 제압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정찰드론에 전자파 탐지 센서와 탄두를 장착한 형태였다. 지상 발사대를 떠난 하피는 적 방공기지의 상공을 수 시간 동안 선회한다. 그리고 적 레이더의 전자파를 감지하면, 이를 역 추적해 다이빙하듯 충돌ㆍ파괴하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하피(Harpy) 발사 장면, IAI

하피(Harpy) 발사 장면, IAI

2000년대부터, 미세 전자기계 시스템ㆍ2차 전지ㆍ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면서 자폭드론의 소형화, 상용부품 활용이 가능해졌다. 이란의 샤헤드-136이 대표적이다. 제원은 동체 길이 3.5m, 날개폭 2.4m, 중량 200㎏, 탄두 30∼50㎏, 비행거리 2,500㎞, 단가는 2만 달러(3000만 원)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이를 저가의 순항미사일처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 엔진을 장착해 비행 소음이 크고, 항법ㆍ유도장치의 한계로 전력 인프라 같은 고정표적만 타격이 가능하다.

최신 자폭드론은 이동표적까지 정밀타격 가능  

미국의 자폭드론은 크기를 줄이고 광학ㆍ적외선 센서ㆍ비행제어장치ㆍ데이터 링크를 장착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래서 ‘이동표적’까지 타격할 수 있다. 스위치블레이드(Switchblade) 600이 대표적이다. 전기모터 장착으로 소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요격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길이 1.3m, 폭 1.8m, 중량 23㎏, 탄두 3∼5㎏, 비행거리 90㎞로서 적 전차까지 파괴가 가능하다.

러시아가 발사한 이란제 샤헤드(Shahed)-136 자폭드론이 우크라이나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

러시아가 발사한 이란제 샤헤드(Shahed)-136 자폭드론이 우크라이나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

이에 자극을 받은 러시아도 비슷한 방식의 란쳇(Lancet)을 개발ㆍ운용하고 있다. 지난 8월, 고속으로 질주하는 ‘스트라이크 장갑차’를 란셋이 추적해 파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된 바 있다.

미. 육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자폭드론의 유효성을 확신하게 됐다. 그래서 자폭드론을 ‘지상군 보병부대’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7월에 발표된 ‘저고도 추적ㆍ타격 무기(LASSO: Low Altitude Stalking and Strike Ordnanc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핵심 내용은 최신 자폭드론을 보병전투여단(IBCT) 예하 ‘대대’ 단위에 전력화하는 것이다. 향후에는 이를 ‘중대’ 단위까지 더욱 확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과의 군사력 경쟁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공개한 ‘리플리케이터 이니셔티브(Replicator Initiative)’가 대표적이다. 핵심 내용은 “중국군의 양적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2년 이내 수천 개의 저비용 무인 자율무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무기의 종류를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자폭드론이 최우선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개발된 알티우스(Altius) 600 자폭드론은 비행거리가 440㎞에 달한다. 지상ㆍ해상ㆍ공중의 기존 플랫폼은 물론, 심지어 XQ-58A 발키리(Valkyrie) 같은 무인 전투기에서 시험발사까지 마친 상태이다. 앞으로 자폭드론의 활용범위가 더욱 확대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상군 소부대 단위까지 확산하는 추세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자폭드론은 모두 이스라엘 제품이다. 하피는 1995년에, 로템(Rotem)-L(특임여단용, 중량 5.8㎏, 탄두 1.2㎏, 비행거리 10㎞)은 지난해 도입됐다. 세계 각국의 자폭드론이 최소 210종이나 되지만, 개발을 완료한 국산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운용범위를 ‘특수 목적’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폭드론을 ‘지상군 소부대 단위’까지 확산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XQ-58A 무인기에서 발사되는 알티우스(Altius) 600 자폭드론. 미 공군

XQ-58A 무인기에서 발사되는 알티우스(Altius) 600 자폭드론. 미 공군

한반도 작전환경의 특수성 측면에서도 자폭드론은 매우 유용하다. 걸프전쟁(1991년), 이라크전쟁(2003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상 작전이 최단기간 최소피해로 종결했다는 점이다. 이는 항공전력 위주의 ‘여건조성작전’이 39일, 10일 동안 선행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개전과 동시에 치열한 근접전투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북한 지상군은 양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 자폭드론은 이를 극복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한국 지상군의 부대구조는 하부로 내려갈수록 취약하다. 예를 들면, 분대 단위의 병력이 북한군 12명ㆍ미군 9명이지만, 한국군은 8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병역자원이 감소하면, 부대의 수와 편성ㆍ보직 비율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신 자폭드론의 원거리 작전반경, 이동표적 정밀타격 등은 지상군의 기존 화력자산 대비 차별화된 능력이다. 이를 활용한다면, 한국 지상군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효과적으로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이 자폭드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징후를 보이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 9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연해주 지사가 자폭드론 5종을 선물한 바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란쳇도 포함됐을 것이다. 북한군도 러시아처럼 공군력의 한계를 대규모 자폭드론 운용으로 보완하려는 시도할 수 있다. 수년 내, 남북한 자폭드론 전력의 역전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자폭드론의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은 최신 자폭드론의 차별적인 능력에 주목하고, 이를 지상군 소부대까지 확산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의 현주소는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원인을 진단하고, 자폭드론의 개발과 전력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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