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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제3부 공연’ 앙코르의 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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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류태형
류태형 기자 중앙일보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얼마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유자 왕의 연주를 들었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연주자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다.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그는 까다로운 곡도 척척 해결하는 눈부신 기교의 소유자다. 패셔니스타로 손꼽혀 연주할 때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와 킬힐을 소화한다. 남자친구인 세계적인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27)가 객석에서 연인을 지켜봐 화제가 됐던 이번 서울 공연에서 유자 왕은 메시앙과 스크랴빈, 드뷔시와 베토벤을 넘나드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반응은 엇갈렸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 “초인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었다”는 댓글이 SNS에서 보였다. 앙코르곡 수가 적어서 그랬단 얘기가 많았다. 지난해 고양에서는 앙코르를 8곡, 이번 대구 공연에서는 앙코르를 7곡 들려준 데 비해 서울에선 3곡만 했기 때문이란다.

지난달 25일 열린 피아니스트 유자 왕 연주회 앙코르 포스터.

지난달 25일 열린 피아니스트 유자 왕 연주회 앙코르 포스터.

티켓을 구입한 관객의 입장에서 연주자의 앙코르 수는 다다익선일 수 있다. 한 곡이라도 더 들은 음악회는 더 많은 음식을 먹은 듯한 포만감과 비슷하다. 지난 2006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은 첫 내한 독주회 무대에서 무려 10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그때부터 ‘1부, 2부에 이어지는 앙코르는 공연의 제3부’란 말이 생겼다. 풍성한 음악적 포만감은 대단했지만 귀갓길이 늦어졌다. 공연 뒤 대중교통이 끊길까 봐 걱정하던 관객들도 생각난다.

음악평론가나 음악계 관계자, 평소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소문난 사람들에게 앙코르는 공포였다. 다행히 잘 아는 곡이면 괜찮지만 제목이 가물가물 잘 생각나지 않는 곡이나 전혀 들어보지 못한 곡이 앙코르로 나오면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세 번째 앙코르곡 제목이 뭐예요?”란 질문이 들어오면, 모르겠다고 해도, 틀린 곡을 알려줘도 면이 안 선다.

요즘은 달라졌다. 앙코르곡이 아무리 많더라도 공연이 끝나면 출입문 쪽 벽에 앙코르곡을 적어놓은 포스터가 붙는다. 믿을만한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얻을 수 있으니 관객을 위한 확실한 서비스다. 머릿속에 앙코르곡이 뱅뱅 맴도는 음악 고수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앙코르 방’은 누가 먼저 붙이기 시작했을까. 원래는 공연기획사들이 자체적으로 붙이곤 했다. 일본 클래식 공연장에서 보고 도입했단 얘기도 있다. 기획사뿐 아니라 공연장에도 앙코르곡 문의가 빗발치자 예술의전당에서는 2015년경 아예 앙코르곡 포스터용 종이를 인쇄해서 해당 공연기획사에 제공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연장에 가면 예정된 프로그램 뒤 미지의 앙코르 한 곡 정도는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선물 같은 여운이 오래 각인될 때가 많다.

물론 경건한 진혼곡이나 미사곡, 기나긴 대곡을 연주한 다음 등등 앙코르가 없는 편이 더 나은 때도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