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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발행한도 꽉 찬 한전, 자회사에 4조 손 벌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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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전력이 천문학적 손실 누적 등으로 내년 회사채 발행 한도까지 막힐 상황에 부닥치면서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 자회사에 최대 4조원의 중간배당을 처음으로 요구했다. 자회사들이 이번 주 이사회를 열어 해당 안건을 다루는 가운데 재무 악화에 따른 내부 반발, 배임 우려 등 진통이 여전하다. ‘아랫돌 빼 윗돌 괴기’식 고육지책인 만큼 전기요금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 분기별 영업손익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전력]

한전 분기별 영업손익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전력]

1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최근 한수원·동서·남동·남부·중부·서부발전 등 6개 발전 자회사에 연말까지 중간 배당을 결의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전 측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의를 거쳐 중간 배당으로 최대 4조원을 받는 걸 목표로 잡았다. 업계 내에선 한수원이 최대 2조원, 다른 발전사 5곳이 최대 4000억원씩 배당할 거란 이야기가 나온다. 한전이 자회사에 중간 배당을 따로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전의 빚이 점점 늘어나는 데다 올해 연간 적자도 확실시되면서 내년 한전채 한도(‘자본금+적립금’의 5배)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은 3분기까지 6조4534억원에 달하고, 4분기 실적도 흑자를 장담하기 어렵다. 올 한해 6조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난다고 가정하면 자본금과 적립금의 합계 액수가 14조9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내년 한전채 발행 한도는 약 74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10월 말 기준 발행 잔액(약 79조6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새로 찍어내긴커녕 기존 한전채를 상환해야 할 상황이다. 한전으로선 전력대금 지급 등 자금 융통이 사실상 막히는 걸 피하려 해가 바뀌기 전 ‘마지막 카드’를 쓴 셈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발전 6개 사들은 모회사 요구에 줄줄이 이사회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중간 배당 근거를 만들기 위한 정관 개정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한수원이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었지만 일부 반대로 표결을 보류했고, 11일 다시 열어 통과시켰다. 동서발전도 이날 정관 변경안을 가결했다. 나머지 발전사들은 14일까지 이사회를 개최한 뒤 표결에 부치게 된다.

모두 정관 변경에 동의해도 산업부 승인 후 구체적 액수를 정하는 ‘2라운드’가 남아있다. 늦어도 이달 말까지 자회사별로 다시 이사회를 열어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진통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한수원은 올해 3분기까지 160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다른 발전 5개 사도 같은 기간 흑자를 내긴 했지만 2000억~4000억원 수준이다. 배당 수용 시 전반적인 재무제표 악화를 피할 수 없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밖에 답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대로면 한전에서 자회사, 민간 발전사, 전력 생태계 전반으로 점차 문제가 커진다. 지난 정부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전기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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