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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태취재 | ‘연애 예능’에 열광하는 MZ들의 속마음

중앙일보

입력

“실제 같은 연애에 대리 설렘, 헤어진 옛 연인 추억했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나는솔로’ 등 일반인 출연하는 연애 프로그램 전성시대
현실적인 이야기에 몰입감… 출연자들이 연예계 진출 위해 ‘발판’ 삼는다 비판도

직장인 안모(26·남) 씨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리얼한 모습 덕분에 몰입감이 더해진다고 밝혔다. 사진은 ‘나는 솔로’의 남녀 출연자들이 데이트에 앞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 / 사진:ENA

직장인 안모(26·남) 씨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리얼한 모습 덕분에 몰입감이 더해진다고 밝혔다. 사진은 ‘나는 솔로’의 남녀 출연자들이 데이트에 앞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 / 사진:ENA

일반인 남녀가 한곳에 모여 며칠 동안 생활하면서 자신의 짝을 찾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맞았다. 완벽한 비주얼과 남다른 직업을 가진 청춘 남녀가 출연하는 ‘하트시그널’부터 헤어진 커플들이 출연해 전 연인과 재회하거나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이어가는 ‘환승연애’,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출연하는 ‘나는 솔로’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최근 시청률이 치솟고 있는 ‘나는 솔로’는 과거 인기 연애 프로그램 ‘짝’을 연출했던 남규홍 PD의 작품으로, 최근 기수인 ‘16기’가 방송되는 기간(2023년 7월 26일~10월 4일)에는 6.5%(ENA·SBS플러스 합산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 프로그램은 TV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숏폼(짧은 길이의 영상)’ 형태로 재확산되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설문조사(500명 대상으로 진행)에 따르면, 20·30세대 미혼 남녀 4명 중 1명(남자 19.6%, 여자 28.4%)은 연애 예능을 즐겨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나는 솔로’는 20·49세대 타깃 시청률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젊은 세대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연애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형식의 소개팅 프로그램도 증가하고 있다. 취미 여가 플랫폼인 ‘프립(FRIP)’은 지난 4월부터 ‘하트트래블’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남녀 참가자 각각 4~6명이 1박 2일 동안 합숙하며 서로의 짝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자기소개와 단체 게임, 1대1 데이트를 거쳐 최종 커플을 결정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기도 한다. 경기 성남시는 ‘솔로몬의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4차례 행사에 남녀 180쌍이 참가했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2%가 짝을 찾았다. 연애 예능이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대학생 및 직장인을 대상으로 솔직한 이유를 들어봤다.

“연예인 아닌 일반인이 출연해 더 리얼”

대학생 민모(26·남) 씨는 이별한 커플들이 출연하는 ‘환승연애’를 통해 2년가량 사귀던 여자친구와 이별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했다. 사진은 환승연애 시즌2 포스터. / 사진:티빙

대학생 민모(26·남) 씨는 이별한 커플들이 출연하는 ‘환승연애’를 통해 2년가량 사귀던 여자친구와 이별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했다. 사진은 환승연애 시즌2 포스터. / 사진:티빙

‘나는 솔로’를 즐겨 본다는 직장인 황모(25·여) 씨는 “평소 이미지 노출이 많이 된 연예인들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출연자들의 솔직한 모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반면 일반인들은 정말 연애하고 싶어서 나왔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본다”고 말했다. ‘나는 솔로’ ‘환승연애’ 등의 프로그램은 일부 패널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인 출연진으로 구성된다. 이로 인해 프로그램에 몰입감이 더해진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직장인 안모(26·남) 씨도 “과거에 유행했던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연애 예능은 아무리 리얼리티라고는 하지만 연예인이 출연하기 때문에 대본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실제로 연예인들끼리 사랑에 빠질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며 “그런데 일반인들은 만남이 실제 연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연예인보다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이나 발언도 거침이 없어 더 재밌다”고 밝혔다.

연애 예능을 통해 인간상을 파악할 수 있어서 즐겨 본다는 시청자도 있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출연진이 서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출연진의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학생 양모(26·여) 씨는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는 모습보다는 리얼하게 나타나는 출연진의 성격과 표현 방식 등을 관찰하는 재미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이성에 대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마음을 어떻게 접는지도 모두 다른데, 다양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어서 연애 예능을 더 즐긴다”고 말했다.

실제 방송이 끝나면 악플에 시달리는 출연자도 있을 정도로 이들의 모습은 정제되지 않은 채 드러난다. 대학생 강모(25·남) 씨는 몇몇 출연자들의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을 보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남의 말을 왜곡하는 출연자도 있었다. 사회생활에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말이 와전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 모임에 나가면 발언을 특히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리 설렘도 느끼고… 옛 연인도 추억”

연애 예능이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비슷한 형식의 소개팅 프로그램도 생기고 있다. 사진은 경기 성남시가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솔로몬의 선택’ 행사 현장. / 사진:연합뉴스

연애 예능이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비슷한 형식의 소개팅 프로그램도 생기고 있다. 사진은 경기 성남시가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솔로몬의 선택’ 행사 현장. / 사진:연합뉴스

대리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연애 예능을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학생 김모(25·여) 씨는 “제3자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설렌다”고 말했다. 특히 연애하는 모습이 아니라 ‘썸(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친구 이상으로 가까이 지내는 미묘한 관계)’ 단계를 조명하기 때문에 더 빠져든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는 “출연자들이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상황에서 ‘쟤가 날 좋아하나’라고 생각하는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밝혔다. 학창 시절, 교실 뒤편에서 친구들의 짝사랑이나 연애 이야기를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던 경험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김씨는 “나는 외동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을 제외하면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지는데, 요즘에는 연애와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방송을 보면서 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연애나 결혼 생각이 없는 시청자들은 연애 예능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학생 이모(25·여) 씨는 “요즘 20·30세대는 자기 일에 치여서 산다. 내 일하기도 너무 바쁜데, 연애까지 하면서 내 감정을 쏟을 에너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정모(26·남) 씨 역시 “솔직히 예능이라 보는 거지, 내가 저 상황에서 연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막막하다. 현생 살기도 바빠서 연애 예능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능을 보면서 자신이 연애했던 경험을 추억하는 이들도 있다. 대학생 민모(26·남) 씨는 이별한 커플들이 출연하는 환승연애를 통해 2년가량 사귀던 여자친구와 이별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굉장히 감정이 격했던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자신이 헤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장면에 나도 모르게 몰입됐다. 가슴이 꽉 막히고 숨까지 턱 막히더라”며 “출연자들이 헤어진 이유는 굉장히 사소했다. 나도 잘 만나다가 사소한 이유 때문에 헤어졌는데, 그들의 상황을 보니 내 이야기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민씨는 “누구나 연애나 짝사랑 경험은 있을 것이다. 물론 잘 됐을 수도 있고, 잘 안 됐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몰입도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연예인 되기 위해 발판 삼는다” 지적도

연애 예능 ‘나는 솔로’를 연출한 남규홍 PD는 “2023년 현재 한국인의 사랑을 보려면 ‘나는 솔로’를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연애 예능 ‘나는 솔로’를 연출한 남규홍 PD는 “2023년 현재 한국인의 사랑을 보려면 ‘나는 솔로’를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연애 예능은 정해진 각본 없이 진행되는 탓에 허구의 세계를 보여주는 드라마보다 흥미롭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씨는 “나와는 동떨어진 내용이라 그런지 일반 드라마는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면서 “반면 연애 예능은 내 경험도 상기시키고 추억도 되새기면서 연애를 시작했던 설레는 감정과 헤어질 때 힘들었던 아픔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겨 본다”고 말했다.

연애 예능을 제작하는 PD의 생각은 어떨까?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예능 ‘나는 솔로’의 남규홍 PD는 지난 10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솔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에 “2023년 현재 한국인의 사랑을 보려면 ‘나는 솔로’를 보면 된다”며 “가장 사실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게 우리들이 만드는 리얼리티의 의미”라고 말했다. ‘하트시그널’의 박철환 PD도 지난 5월 제작발표회에서 “(방송에서) 많은 장치를 덜어내려고 했다”며 “제작진이 최대한 사라지도록, 시그널 하우스(합숙하는 장소)에 입주할 때부터 제작진의 카메라가 최대한 보이지 않게 숨어서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리얼함을 담을 수 있도록 집중했다”고 밝혔다.

연애 예능이 칭찬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비판 받은 지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출연한다는 비판, 사생활 논란이 있는 일반인을 출연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당초 연애 예능이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출연해 꾸밈없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꼈던 것인데,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을 확장하거나 SNS에서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사람)로 성장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연예계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비판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외딴섬에서 펼쳐지는 연애 예능 ‘솔로지옥’의 몇몇 출연자들은 방송이 끝난 뒤 기획사에 소속돼 연예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일부 출연자를 둘러싼 사생활 논란도 비판받는 부분이다. ‘하트시그널’의 한 출연자는 TV에 얼굴이 공개되면서 과거 자신의 범죄 이력이 부각돼 비판을 받았다. 방송 출연 후 배우로 활약하던 그는 현재 KBS·EBS·MBC 영구 출연정지 연예인 리스트에 올랐다. ‘나는 솔로’의 한 출연자는 자신의 혼인 이력을 숨기고 방송에 나온 것이 드러나 제작 뒤 ‘통편집’을 당하기도 했다. 한 시청자는 “연예인이 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것 같다고 느껴지거나, 출연자들의 과거가 논란이 되면 프로그램에 몰입이 되다가도 김이 팍 샌다”고 지적했다.

-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gur145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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