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대중 무역적자 560조원, EUㆍ중국 무역전쟁 서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중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안보 전략이 맞부딪히고 있다. 미국의 장벽을 피해 EU 시장을 공략하려는 중국과 불공정한 무역 역조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EU의 균열이 본격화됐다. 지난 7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EU 정상회담은 살얼음판 같은 무역 전쟁의 전초전을 보여준 상징적인 현장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오른쪽),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이 지난 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오른쪽),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이 지난 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싸늘하게 끝난 중-EU 정상회담

회담을 마친 뒤 베이징에서 회견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표정이 굳어 있다. AP=연합뉴스

회담을 마친 뒤 베이징에서 회견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표정이 굳어 있다. AP=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회담 후 “정치적으로 유럽 지도자들은 우리의 산업 기반이 불공정 경쟁으로 인해 훼손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경쟁을 좋아하지만 그 경쟁은 공정해야만 한다”고 직격했다. 공동 성명 등 합의문 발표도 없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감시받지 않는 안전한 통신선이 없다며 회담 당일 중국을 떠났다. 중국 외교부는 “양 정상 간 폭넓은 협력을 통해 이익 공동체로서의 유대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결과물 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싸늘한 분위기는 예견됐다. 반년 사이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는 지난 6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분류하고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첫 번째 경제 안보 전략을 발표했다. 독일은 지난 7월 민감한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제한하는 최초의 대중 전략을 내놨고 10월엔 유럽연합이 중국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부당 지급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탈리아는 중국-EU 정상회담 전날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서 공식 탈퇴했다.

미국보다 많아진 EU 대중 적자

중국 전기차 생산기업 1위인 비야디(BYD)가 노르웨이에 수출할 차량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바이두 캡처

중국 전기차 생산기업 1위인 비야디(BYD)가 노르웨이에 수출할 차량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바이두 캡처

중-EU 관계가 궤도를 이탈한 건 무역 불균형이 심화하면서다. 지난해 EU의 대중 무역적자는 4260억 달러(562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 규모 3829억 달러(483조원)보다 많았다. 특히 2020년(1962억 달러)과 비교해 2년 만에 2배를 넘어섰다. 문제는 중국이 보조금을 통한 불공정 경쟁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으며 반대로 유럽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은 방해하고 있다고 EU가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다. 지난 3년간 유럽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전기차의 점유율은 1% 미만에서 8%까지 늘었다. EU가 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차 소비 촉진에 나서면서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을 늘리자 저가의 중국 전기차가 대거 진출했다. 하지만 EU는 지난 10년간 중국 내 전기 자동차 산업이 막대한 국가 보조금을 받은 게 ‘저가’의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이 국가 보조금 지급을 중단키로 했지만 지방 정부 등에서 지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EU의 판단이다. 유럽 내 자동차 관련 직간접 종사자만 1400만명, EU 전체 고용 인구의 6.1%에 달하는 상황에서 불공정 경쟁으로 인한 산업 기반 파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EU 집행위는 조사 시작 9개월 이내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 내년 상반기 전기차 보조금 문제는 중-EU 간 최대 무역 분쟁 이슈가 될 전망이다. 불공정이 확인되면 최대 10% 이상 관세가 추가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조사 시작과 함께 “이번 조사는 철저하고 공정하게 사실에 근거해 진행될 것”이라며 “시장 왜곡으로 인해 정당한 제조업체의 이익이 침해받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는 즉시 우리는 단호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등도 유럽이 중국에 90% 이상 의존하는 품목들이다. EU는 중국에 의존했던 저가형 원자재와 친환경 부품 등의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은 물론 EU 기업과 상품의 중국 시장 접근을 개선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중국법상 외자 기업은 중국 공급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중국 국가안보법에 대한 우려도 있어 유럽 기업들 역시 활동이 위축되거나 제약을 받고 있다.

유럽 극우정당 부상...반중 정서 확산

극우정당 출신의 조르자 멜로니(46)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6일 중국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이탈리아의 공식 탈퇴를 통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극우정당 출신의 조르자 멜로니(46)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6일 중국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이탈리아의 공식 탈퇴를 통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극우정당이 부상하는 유럽의 정치 지형 변화도 중-EU 관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 전략 싱크탱크 스트랫포(Stratfor)는 최근 여론조사를 토대로 내년 6월 EU 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약 25%(총 705석 중 169석)를 장악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反)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이탈리아ㆍ핀란드ㆍ스위스에서 극우 정당이 집권한 데 이어 내년에 총선을 치르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루마니아도 극우 정당 후보들이 1,2위를 달리고 있다. 유럽 극우 세력은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극우 정당 소속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해 취임 후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 참여한 것은 실수”라며 탈퇴를 공언했고 이를 실행했다.

중국은 정상적인 교역이란 점을 부각하며 방어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중국이 고의로 무역흑자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표면적으로는 중국이 흑자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럽 측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향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역시 중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내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중국 탓을 할 필요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보조금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과 EU가 상호 호혜적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과 EU가 상호 호혜적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EU 움직이면 중국도 보복 시도할 것” 

동시에 중국은 최근 비자 면제 국가에 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네덜란드ㆍ스페인 등 유럽 5개국을 포함하고 반중 입장을 취한 리투아니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유화 제스처라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중국 당국은 당분간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관망할 것이며 EU의 구체적인 조치가 시행될 경우 공개적으로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EU집행위는 “유럽은 중국과의 분리(디커플링)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위험을 줄이는 것(디리스킹)”이라고 말했지만 양 진영 간 전운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