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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 골프 2년 뛰고 떠나는 타이거 키드 김시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LIV 프로모션스대회가 열린 아부다비 골프장에서 인터뷰하는 김시환. 성호준 기자

LIV 프로모션스대회가 열린 아부다비 골프장에서 인터뷰하는 김시환. 성호준 기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골프 클럽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김시환(35)은 주황색 알파벳 I와 H를 합성한 아이언헤드 로고 티셔츠를 입고 공을 치고 있었다. 아이언헤드는 교포 선수 케빈 나가 캡틴을 맞고 있는 LIV 골프 12개 팀 중 하나다.

김시환은 지난해 창단 멤버로 아이언헤드 팀에 합류해 두 시즌을 LIV에서 경기하고 올 시즌 직후 방출됐다. 내년 LIV 출전권이 걸린 프로모션 대회에 참가한 김시환을 8일 만났다.

김시환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0년 미국에 이민 갔다. 타이거 우즈가 그랬듯 15세에 US 주니어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우즈처럼 스탠퍼드 대학에 다녔다. 키 188cm에 장타를 치는 점도 비슷했다. 여자 타이거라는 별명을 들은 미셸 위의 대학 동기이기도 하다. 미셸 위는 일찌감치 프로가 됐기 때문에 대학 골프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김시환은 팩10 리그(미국 서부지역 대학리그) 신인상을 탔다. 타이거 같은 삶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졸업 후 잘 풀리지 않았다. 2011년 유럽 2부 투어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유러피언투어(현 DP 월드투어)에 잠시 올라갔다가 2017년 아시안 투어로 무대를 옮겼다.

골프 선수들은 아시안 투어를 빅리그로 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오아시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시환은 오아시스를 떠나지 못했다. 우승 기회는 있었지만 우승은 못 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부터 김시환의 퍼트가 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보는 대로 다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김시환은 지난해 상반기 2승을 기록했다. 프로 전향 후 11년 만에 기록한 첫 우승은 마침 인터내셔널 시리즈 대회였다.

김시환이 지는 10월 LIV 마이애미에서 경기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김시환이 지는 10월 LIV 마이애미에서 경기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사우디가 오일달러를 퍼부은 LIV는 PGA 투어에 대항해 아시안투어를 위성투어로 만들었고 LIV 자금으로 만든 인터내셔널 시리즈 우승자에 특전을 줬다. 그 덕에 김시환은 LIV에 입성하게 됐다. LIV 원년 멤버 중 김시환이 최고 행운의 선수로 꼽혔다.

첫해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LIV 방콕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시즌 랭킹 2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게임 후 가파른 내리막길을 탔다. 2023시즌 개막전인 마야코바 대회에서 3라운드 합계 23오버파를 쳤다. 보스턴 대회에서는 한 라운드 87타를 치기도 했다. 다음날 63타를 쳤지만, 상처는 남았다.

김시환은 “지난해 막판부터 샷이 약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LIV는 팀 경기가 있어 팀 동료에 누가 될까 봐 압박감이 더 들었다. 샷에 신경 쓰다 보니 퍼트도 안 됐다. 한쪽으로 실수하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데 양쪽으로 공이 나가면 방법이 별로 없다”고 했다.

김시환은 최하위 4번에 48명 중 43위 이내 든 건 한 번뿐이었다. 김시환은 성적 부진으로 브룩스 켑카의 친동생인 체이스 켑카 등 3명과 함께 방출됐다. 프로모션 경기에서도 탈락해 내년 LIV 티켓을 되찾지 못했다.

자신을 방출한 LIV를 원망하지 않았다. 김시환은 “LIV에서 보낸 두 시즌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10여년 투어 생활하며 적자가 쌓였는데 LIV에서 다 만회했다. 아이언헤드팀 캡틴 케빈 형이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려 노력해 감사한다. 지난해 LIV 방콕 대회에서 3위를 한 일, 올해 같은 팀의 대니 리가 우승한 것 등 좋은 기억도 많다”고 했다.

9일 아부다비 골프장에서 벌어진 LIV 프로모션스대회에서 경기하는 김시환. 사진=LIV

9일 아부다비 골프장에서 벌어진 LIV 프로모션스대회에서 경기하는 김시환. 사진=LIV

김시환은 2시즌 동안 50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고 알려졌다. LIV 출현이라는 골프 격변의 시대 그 현장을 직접 지켜본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시환은 LIV 내부 일에 대해 말을 아꼈으며 “작년 PGA 투어에서 LIV로 옮긴 선수들이 비난받은 걸 잘 알지만 나는 돈을 받고 간 게 아니라 정당하게 자격을 딴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골프에서 주니어 시절 잘 나가다 사라진 선수는 부지기수다. 김시환도 슬럼프를 겪었으나 10년 넘게 버텨 LIV라는 기회를 잡았다. 김시환은 “성적이 좋아지는 시점에 LIV가 생겨서 그 결실을 누렸다. 마치 영화 시나리오처럼 착착 들어맞았다”고 했다.

김시환은 “아시안투어에서 뛰면서 LIV에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시환은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다 2014년 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태희, 문경준과 친하다.

아부다비=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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