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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다리 휘청, 이래서 안되나…"공쳤다" 전주 막걸리 골목 한숨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오후 전주시 삼천동 막걸리 골목. 한창 술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지만 거리가 한산하다. 김준희 기자

지난 6일 오후 전주시 삼천동 막걸리 골목. 한창 술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지만 거리가 한산하다. 김준희 기자

"맛의 고장 명물"…평일 밤거리 한산

지난 6일 오후 9시쯤 전북 전주시 삼천동. 전주를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알려진 ‘삼천동 막걸리 골목’은 한산했다. 한창 술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간인데도 거리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막걸릿집마다 ‘수요미식회’ ‘백종원의 3대천왕’ ‘알쓸신잡’ 등 방송 장면 캡처 사진을 내걸었다. 연예인 사진과 사인도 즐비했다. 그러나 정작 가게엔 손님이 드물었다. 아예 일찌감치 간판 불을 끈 막걸릿집도 적지 않았다.

막걸리 골목 안내도엔 “전주하면 맛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중략) 특히 막걸릿집은 정이 듬뿍 담긴 푸짐한 안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과 향수로 기억되고 있다”며 “최근 막걸리가 전통 국민주로 각광받으면서 이곳 일대를 중심으로 막걸리 거리가 조성되고 새로운 전주 명물로 자리 잡게 됐다”고 적혀 있다.

전주 막걸릿집은 750mL 막걸리 3병이 들어가는 한 주전자를 시키면 전을 비롯해 두부김치·게장·꼬막·탕·찌개 등 10가지가 넘는 안주가 줄줄이 나오는 게 특징이다. 집집마다 안주 구성과 가격이 다르지만, 각 안주는 단품 요리로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 한 막걸릿집에서 준비한 상차림. 사진 삼천동 막걸리 골목 상인회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 한 막걸릿집에서 준비한 상차림. 사진 삼천동 막걸리 골목 상인회

2017년 막걸릿집 21개…현재 반토막

일식집 주방장 출신 이모(62)씨 부부는 8년째 이 골목에서 막걸릿집을 운영 중이다. 가게에 들어가니 벽·천장이 온통 낙서투성이였다. “순천 미인 다녀갑니다” “이 맛을 기억하며 또다시 오리오” 등 손님들이 남긴 추억의 흔적이 빼곡하다. 이씨는 “우리 집 특별 메뉴는 광어회”라며 “식재료는 시장·마트 등에서 사오고 계절 따라 안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부인 고모(58·여)씨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엔 가게 밖까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며 “요즘은 경기가 어렵고 물가도 올라 손님을 몇 명 못 받고 공치는 날이 태반”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앞서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지난 5일 열린 본회의에서 시정 질문을 통해 “2010년대 중반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 브랜드가 한옥마을과 전주 막걸리였지만, 현재 전주 막걸리를 대표하는 삼천동 막걸리 골목은 점점 잊혀 가는 존재가 됐다”고 꼬집었다. 전주시에 따르면 2017년 10월 기준 삼천동 막걸리 골목에 있는 막걸릿집은 21개였다. 그러나 현재 13개(전주시 추산)로 줄었다. 6년 사이 절반 가까이 폐업했다.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 한 막걸릿집 벽과 천장에 손님들이 남긴 낙서가 빼곡하다. 김준희 기자

막걸릿집 벽에 손님들이 남긴 낙서. 김준희 기자

“반찬 절반 쓰레기통” VS “정체성 훼손” 

한 의원은 막걸리 골목 쇠퇴 원인으로 ‘지나친 관광 상품화에 따른 가격 상승’을 꼽았다. “이 탓에 시민이 외면하고 관광객도 일회성 방문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전주 막걸리 명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안주가 푸짐한 건 맞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안주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친다” “반찬이 너무 많아 결국 반도 못 먹고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등 비판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칫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상차림’이란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 “10년 전 기본 한 상에 1만5000원씩 받던 시절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날 다른 막걸릿집엔 손님 10여 명이 테이블 4개에서 저마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남아 국적 외국인 일행도 보였다. 인천에서 온 직장인 권모(36·여)씨는 오후 7시부터 3시간 넘게 전주 지인 김모(32·여)씨와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두 주전자에 커플상을 먹고 6만1000원을 결제했다.

상이 넘칠 정도로 막걸리 안주가 많아 그릇을 겹겹이 쌓은 모습. 사진 독자

상이 넘칠 정도로 막걸리 안주가 많아 그릇을 겹겹이 쌓은 모습. 사진 독자

“코스 다양화, 가격 차등 필요” 목소리도 

권씨는 “다른 데서 이 정도 먹었으면 10만원이 넘는데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며 “기본적으로 맛있고 안주 구성도 좋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김씨는 “20대 대학생이 오기엔 가격 면에서 진입 장벽이 있는 것 같다”며 “코스를 다양하게 만들고 가격에 차등을 두면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층을 더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스마다 안주가 뭐가 나오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못 먹는 안주는 미리 빼달라고 하고 선호하는 안주는 추가하는 식으로 음식 버리는 걸 막자”는 취지다.

‘삼천동 막걸리 골목’ 상인들도 ‘전주=막걸리 본고장’이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상인회 임시회장을 맡은 ‘용진집’ 대표 김호재(49)씨는 “막걸리 골목 고객의 90%는 전주 한옥마을 관광객과 외국인”이라며 “전국 각지에서 오기 때문에 막걸릿집 대부분은 친절하고 맛·위생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삼천 막걸리 골목 상인회 임시 회장 '용진집' 대표 김호재(49)씨가 가게 앞에서 사진 속 백종원·김준현씨와 막걸리 잔을 부딪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삼천 막걸리 골목 상인회 임시 회장 '용진집' 대표 김호재(49)씨가 가게 앞에서 사진 속 백종원·김준현씨와 막걸리 잔을 부딪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전주시 “상인 의견 모아 대책 수립”

김씨는 “예전엔 막걸리 때문에 전주에 올 정도로 삼천동 막걸리 골목이 한옥마을보다 더 유명한 관광 메카였다”며 “전성기 땐 직원만 주방 5명, 홀 5명이고 하루 평균 매출이 50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경기 악화로 60만~70만원으로 줄었다”고 했다. 그래도 자부심은 여전하다. 김씨는 “전주에 오면 제일 생각나는 게 막걸리와 한정식 아니냐”라며 “기본 안주만 육·해·공 18가지가 나오는데 유명한 한정식집에 일일이 다니면서 벤치마킹해 완성한 상차림”이라고 설명했다.

상인회는 ▶전주 한옥마을 관광 안내 책자에 ‘삼천동 막걸리 골목’ 소개 ▶시 주관 홍보 플랫폼(SNS·홈페이지) 구축 ▶주차 공간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주시는 막걸리 축제 개최 등 활성화 대책을 추진 중이다. 김혜숙 전주시 사회경제과장은 “더 많은 관광객이 전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도록 종합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상인 공동체와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모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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