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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표심 변화, 양안 통일·독립보다 평화공존에 눈 돌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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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09면

한달 앞 다가온 대만 총통선거 향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단기에 종식될 수 없는 지구전이다. 이를 잘 아는 미·중은 막판 승패를 좌우할 ‘힘’과 상대의 허를 찌를 자신만의 ‘패’를 갈고 닦는다. 대만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최고의 전략자산이다. 1971년 중국의 유엔 대표권 쟁취와 1979년 미·중수교 이후에도 대만을 비장의 무기로 관리해 온 이유다. 시진핑의 ‘중국몽’과 ‘강군몽’은 대만문제의 급부상을 초래했다. 장기집권을 정당화해야 하는 시진핑의 중국이나 그런 중국을 제어해야 하는 미국 모두 대만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대만 총통선거가 1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차이잉원 총통의 8년 집권 이후 민진당의 재집권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과열 양상을 보인다. 선거 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지지율 2, 3위 후보의 단일화가 막판에 결렬되기도 했다. 미·중은 대만문제의 변곡점이 될 내년 1월 13일의 선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달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바이든과 시진핑이 대만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며 설전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여·야 번갈아 집권 패턴 바뀔 가능성 커

지난 3일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왼쪽)와 차이잉원 총통 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왼쪽)와 차이잉원 총통 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총통 선거에서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 첫째, 대만의 굴곡진 정치사와 관련된 대만인(本省人)과 대륙인(外省人)의 정치적 성향이 민진당과 국민당의 지지로 나뉘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반면 미·중 패권경쟁과 대만문제의 국제화에 대한 기본 인식, 양안교류에 대한 이해관계의 차이가 지지 정당, 후보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인식하던 남부지역 유권자들은 절대적으로 민진당을 지지했고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은 국민당 지지가 우세했던 패턴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 총통 직선제 시행 이후 국민당과 민진당이 번갈아 집권해 온 기존의 정권교체 패턴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연임에 실패한 총통이 없었고 8년 집권 이후 동일한 정당이 재집권한 경우도 없었다. 그런 전통이 이번에 깨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셋째, 기존의 민진·국민 양당체제를 벗어나 민중당처럼 무시할 수 없는 제3당이 등장하고 청년층 중심의 정치세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대만의 정치과정이 출신, 지역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에 안주하는 양당체제에서 벗어나 좀 더 역동적으로 진화할 것임을 의미한다.

주요 정당 후보들을 면면을 보자.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는 대만 남부 타이난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민진당 정치인이다. 2016년 민진당 집권과 함께 총리격인 행정원장을 거쳐 현 부총통으로서 차이잉원의 신임을 받고 있다. 기존 민진당 정치인들의 강성 이미지와 달리 유하고 합리적인 성격으로 남부뿐만 아니라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이미 확보한 그는 최근 샤오메이친(蕭美琴) 주미 대만경제문화대표처(TECRO) 대표를 부총통 후보로 확정했다. 샤오 후보는 타고난 정치 감각과 미국 정치권과의 ‘관시’가 출중한 인물이다. 차이잉원을 능가하는 대만독립주의자로서 중국이 기피하는 인물이지만 후보 확정 직후 샤오는 양안의 평화적 현상유지가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발언 수위를 낮췄다. 실속 없는 독립 주장보다 양안의 평화공존을 바라는 대다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것이다. 민진당의 텃밭인 남부지역도 이젠 무조건 민진당만을 지지하지 않는다. 민진당의 핵심 정치기반인 남부 가오슝에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가 시장을 역임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2020년 총통 선거의 국민당 후보로 차이잉원과 대결한 바 있다. 이는 한국의 보수 정당 후보가 광주시장에 당선되고 대선후보로 선출된 것에 비교할 정도의 ‘사건’이다. 과거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다.

지난달 24일 국민당 총통 후보 허우유이(왼쪽)가 부총통 후보 자오샤오캉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국민당 총통 후보 허우유이(왼쪽)가 부총통 후보 자오샤오캉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민당 대선 후보인 허우유이(侯友宜)는 타이베이 외곽의 신베이 시장을 지냈으며 비교적 무난하게 당내 후보 경선을 거쳤다. 다만 허우유이는 경찰청장 출신으로 외모부터 과거의 국민당 군부, 경찰 이미지를 강하게 띠고 있어 최근의 변화된 대만 선거 지형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다. 이는 국민당의 최대 무기인 조직, 재력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과거 민진당이 대만독립과 양안교류 축소 등을 주장하던 시기에는 국민당이 이를 백해무익한 선전선동으로 비난하며 선거 전략을 차별화 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진당의 평화공세를 유권자를 기만하는 위장전술로 비난하고 민진당 강령에 명시된 대만독립 조항 삭제, 하나의 중국에 대한 ‘92 합의’ 승인 등을 요구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많은 유권자들은 골수 독립주의자 차이잉원 집권기에도 양안 경제교류가 큰 문제없이 이루어졌고 지금의 양안 갈등과 군사적 긴장이 민진당이 아닌 미중 패권경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당은 참신한 인물과 정책으로 대결해야 하지만 비대한 몸집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신을 방해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인물은 타이베이 시장을 역임한 커원저(柯文哲) 민중당 후보다. 그동안 제3당 후보가 높은 지지율로 민진·국민 양당 후보를 위협한 경우가 없었다. 국민당과의 후보 단일화에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민진당·국민당 후보의 막판 경쟁에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사실 민중당과 국민당은 민진당의 재집권 차단 외에 단일화의 구심점이 없다. 결렬 후 커원저가 말한 대로 양당은 이념이 너무 다르다. 많은 유권자들이 민진·국민 양당체제에 거부감이 있지만 실제 투표에서 민중당 후보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후보 자질·정책 중심 선거 시발점 될 듯

지난달 24일 후보 등록을 위해 선관위에 도착한 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 [AF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후보 등록을 위해 선관위에 도착한 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 [AFP=연합뉴스]

2024 대만 총통선거는 미·중의 대리전으로 불릴 정도로 이들의 개입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역대 선거도 미·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현 상황에서 더욱 예민하게 투영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원했던 대만 지도자는 대만문제의 안정적 관리와 양안의 현상유지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독립 주장으로 양안의 긴장을 초래하는 인물은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전략이 압박으로 전환되면서 중국을 자극하던 과거의 ‘문제아’가 미국의 전략에 충실한 ‘모범생’으로 탈바꿈했다. 단적인 예로 차이잉원은 강한 독립주의자 이미지 때문에 2012년 대선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해 패배했지만 2016년, 2020년 대선에서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무난히 당선되었다. 차이 총통이 개과천선한 결과가 아니라 미국의 모범생 선별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력은 이미 바이든의 각종 발언, 무기 판매와 군사력 전개, 의회의 대만관련 결의 및 지도부의 대만 방문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투사되고 있다. 대만 유권자들은 각 후보에 대한 미국의 평가에 매우 민감하다. 미국이 반대하는 후보가 대만 총통으로 당선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 역시 이번 선거를 예의주시하며 호시탐탐 개입 기회를 엿보고 있다. 중국은 민진당의 대만독립 주장 강도가 약해졌지만 이는 전술적 변화일 뿐 독립에 대한 속내는 전혀 변치 않았다고 판단한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민진당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기존의 8년 주기 집권당 교체 패턴이 바뀌고 민진당이 장기집권 할 것을 우려하지만 이를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2015년 중국은 민진당 차이후보에 열세인 국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시진핑과 마잉주 당시 대만총통의 싱가포르 ‘국공회담’을 급조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대만 유권자들은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중국의 개입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하다. 사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을 무력화시킨 것은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가 아니라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무력진압하고 ‘일국양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중국정부였다. 중국이 최고의 차이잉원 선거 도우미였던 셈이다. 이는 국민당 후보에 대한 중국의 어설픈 지원과 개입이 회복불가의 역풍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중국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대만의 생존에 절대적인 경제교류 관련 인센티브 확대, 중국내 대만기업인의 국민당 지지 독려 등인데 이 역시 효과가 미미하다. 민진당이 집권하면 양안 경제협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유권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은 효과적이고 뒤탈 없는 선거 개입 수단이 없다.

2024 대만 총통 선거는 대만정치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우선 ‘공산중국’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유중국’의 민주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중국대륙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130년을 살아온 대만인들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저력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양안의 통일과 독립, 교류와 단절, 미국과 중국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후보의 자질과 능력, 정당의 비전과 정책 중심의 선거로 이행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통일과 독립이 모두 불가능한 상황에서 양안의 평화공존이 최상이라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향한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 변화에 한 발 앞서 다가가는 자가 승자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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