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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정쟁에 묻힌 한국경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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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최근 중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리면서 내년 세계경제 전망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당장 유가가 급락하면서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내년 세계경제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국내외 주요 기관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기존 2.4%에서 2.2%로 0.2%포인트 내렸다. 한은은 2.2%에서 2.1%로, 한국개발연구원(KDI)는 2.3%에서 2.2%로 각각 0.1%포인트씩 낮췄다. 수치상으로는 올해(성장률 전망치 1.3~1.4%)보다 낫지만, 국민이 체감하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AI 기본법, 기업 구조조정법 등
정쟁 볼모로 잡혀 처리 미뤄져

이 같은 답답한 경제 환경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본지가 경제·경영 학계,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금융시장 전문가 등 경제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지난 주 실시한 설문조사(관계기사 4~5면)에서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경제 정책 과제로 ‘수출 재정비와 신산업 진흥’(31.7%)을 꼽았다.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반도체처럼 한국경제를 끌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수출도 그렇지만 신산업 진흥은 정부나 기업 의지로만은 할 수 없다. 관련법상 근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지원을 뒷받침해야 기업도 투자를 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려면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밥그릇을 지킬 수 있을지 골몰하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민생법안은 물론 상대적으로 전문영역에 있는 경제·산업 관련 법안까지 묻히고, 사라지고 있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보관 시설 마련의 근거를 담고 있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은 물론 ‘인공지능(AI) 기본법’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도 기약이 없다. 고준위 특별법은 연내 처리하지 않으면 멀쩡한 원전까지 멈춰 설 수 있지만, 여야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원전 정책 방향성이 다르니 차치하더라도 AI 산업 육성을 위한 AI 기본법, 기촉법까지 진척이 없는 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 법안은 정부와 국회 모두 법안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정쟁의 볼모로 잡혀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기촉법은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비해 신속하게 한계기업을 구조조정할 수 있는 ‘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워크아웃)의 근거인데, 법안이 일몰된 탓에 대유위니아그룹 등 한계기업의 워크아웃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상장사 가운데 한계기업 비중은 2017년 9.2%에서 지난해 말 17.5%로 2배가량 늘었다.

8일 전기차 등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미래차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발의한지 2년 만이다. 경제 정책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뒷북치는 정책으로는 시장을 선점하기는커녕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기도 버겁다. 며칠 전 상임위를 통과한 우주항공청 특별법이 대표적인 예다. 4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후 국회에서 8개월 가까이 공전하다 겨우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연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 미국·중국 등 우주항공 분야 선도 그룹은 물론 인도와 같은 후발주자까지 달 남극 착륙에 성공하는 등 우리와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그나마 여야가 최근 ‘2+2 협의체’를 가동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지만, 실제 결과물이 나올지는 미지수지다. 여야는 올해 초 경제와 기업을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예산안, 이른바 ‘쌍특검’을 두고 극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를, 기업을 살리겠다는 공언은 결국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지켜보는 기업은 속이 타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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