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이자 제한 ‘채무자보호법’…선의만큼 결과도 착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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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취약 차주(대출자)의 연체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목적으로 발의된 ‘개인채무자보호법안’에 대해 금융권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규제에 발맞추다 보면 대출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오히려 취약차주가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거란 주장도 나온다.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개인채무자보호법)’을 심의했다. 추가 법리 검토 의견에 따라 법안을 일부 손질한 뒤 조만간 다시 심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선 “여야 사이 큰 이견이 없는 만큼 21대 국회가 종료되는 내년 5월 이전엔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여야가 합의한 법안에 따르면 금융사는 ▶원금 5000만원 미만 시 연체 이자를 일부만 부과해야 하고 ▶추심 예정일을 사전에 통지하며 추심은 ‘7일에 7회’를 넘으면 안 되며 ▶원금 3000만원 미만 시엔 연체 채무자가 금융사에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금융권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채무 조정’이다. 현재는 신용회복위원회가 연체 채무자의 신청을 받아 대신 조정에 나서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연체 채무자가 직접 금융사에 상환 기간 연장·분할 상환·이자율 조정 등 상환조건을 변경해달라며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채무자가 직접 조정에 나서면 보다 신속하고 유연한 조정이 가능하다’는 게 법안의 제정 취지다.

그러나 이한경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고의로 연체·채무조정 요청을 하는 등 악용할 유인이 존재한다”고 봤다. 금융사는 법안이 정해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이 조정 요청을 거절할 수 없고 10영업일 이내에 결정을 통지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단 조정 요청을 하고 보는’ 움직임이 생길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 채무조정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하다”며 “결국 채무 조정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69개 주요 대부업체 신규 대출액 및 이용자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대부금융협회]

69개 주요 대부업체 신규 대출액 및 이용자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대부금융협회]

‘연체이자 제한’ 조항도 논란이다. 예를 들어 대출원금이 100만원이고 10만원씩 갚기로 했는데, 10만원을 연체했다면 약정이자와 연체이자는 10만원에 대해서만 부과해야 한다. 나머지 원금 90만원에 대해서는 약정이자만 부과하는 것이다. ‘원금 전체에 대해 연체 이자를 물려 이자가 불어나게 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어 실제 손실분에 대해서만 연체이자를 물리겠다’는 목적이 담겼다.

하지만 학계에선 “그간 적용됐던 법리와 달리 새로운 법리라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채무자의 성실 상환 의지를 저해하고 지금까지 성실히 상환한 채무자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냈다.

법안 통과 시 큰 영향을 받는 건 취약 차주가 많이 찾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다. 이들은 법안 내용대로 규제가 더해지면 결국 대출 문턱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대로 통과된다면 곧장 대출 경색이 나타날 것”이라며 “법안 내용을 원점에서 다시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안 주요 내용이 3000만~5000만원 이하 소액 채무자에 대한 보호를 규정한 만큼, 업계에서 소액 대출을 기피해 금융소외 현상이 심화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착한 정책의 역설’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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