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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곧 들이닥칩니다…스릴 넘치는 태국 장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사뭇 송크람 지역의 매끌롱 마켓.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으로 통한다. 비좁은 시장 한가운데로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사뭇 송크람 지역의 매끌롱 마켓.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으로 통한다. 비좁은 시장 한가운데로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왕궁·차이나타운·카오산로드 같은 이름난 관광지를 누비는 여정만이 방콕 여행의 정수는 아니다. 이틀도 필요 없이, 한나절만 투자하면 전혀 낯선 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 쪽배로 빼곡한 운하의 절경이 방콕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다.

부산의 자갈치시장 한가운데로 열차가 지난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방콕에서 약 1시간 거리, 사뭇 송크람 지역 매끌롱강 하구에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으로 통하는 ‘매끌롱 마켓(딸랏 롬 훕)’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maeklong’을 검색하면, 비좁은 시장 가운데로 기차가 지나는 인증사진 수만 개가 뜬다. 가이드 빠야펀은 “전 세계인이 모이는데, 한국에만 아직 인기가 덜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열차와 나 사이 거리 불과 1m

시장의 역사는 제법 길다. 1905년 철도가 들어서자, 뱃길로만 생선을 내다 팔던 장사꾼이 철길에 눌러앉기 시작했다. 증기 기관차가 디젤 기관차로 바뀌고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늘었을 뿐, 시장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300m 길이 철길을 따라 300개가 넘는 상점과 좌판이 빈틈없이 도열해 있다.

“3분 후 열차가 지납니다. 위험하니 조심하세요.”

열차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 시장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상인들이 철길을 가로막고 있던 차양과 좌판을 일제히 거두면, 관광객이 일제히 철길로 쏟아져 나와 열차를 맞는다. 열차와 시장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불과 1m 안팎이다. 시속 5㎞도 못 미치는 속도지만 다들 숨죽여 열차의 행진을 지켜본다. 열차가 지나면 꽁무니에 바짝 붙어 기념사진을 담는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방구차(소독차)를 쫓던 우리네 어린 시절이 문득 스친다. 매일 네 차례 이러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수상시장은 쪽배로 즐겨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

수많은 강과 운하를 거느린 태국에는 수상 시장이 유독 발달했는데, 그중 가장 이름난 것이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이다. 매끌롱 마켓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배를 타고 꼬치·과일 등 다양한 시장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배를 타고 꼬치·과일 등 다양한 시장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미로 같은 운하를 따라 수상 가옥이 끝없이 이어지고, 폭 10m가 안 되는 물길 위로 조각배가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이 시장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형형색색의 과일을 먹음직스럽게 실은 청과상, 고기와 야채를 구워 꼬치를 만드는 물 위의 요리사, 연신 진귀한 기념품을 꺼내 보이는 상인 등 쪽배 위 풍경이 다채롭다.

수상 시장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를 저어 이동하는 날렵한 모양의 쪽배 ‘르어 파이’를 타고 뱃길을 누빈다. 물 위에서는 누구나 공평하다. 목 좋은 자리도 없고, 대형마트도 없고, 줄 서는 맛집도 없다. 호객과 흥정하는 분주함만 있는 세상.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적당한 속도로 흘러간다.

매끌롱 강물 위로 유등을 띄우는 사람들.

매끌롱 강물 위로 유등을 띄우는 사람들.

지난달 27일 매끌롱강의 임파와 수상시장에서는 ‘러이 끄라통(매년 음력 12월 보름 개최)’ 축제를 체험했다. 바나나 잎으로 만든 끄라통(작은 배)을 강물에 띄우는 행사다. 빠야펀이 “축제날 10만 개가 넘는 끄라통이 강물에 뜬다”며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흘러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일러줬다.

직접 만든 ‘끄라통’을 꺼내 보이는 태국 소녀들.

직접 만든 ‘끄라통’을 꺼내 보이는 태국 소녀들.

소원이 깃든 터인지, 끄라통을 단장하는 열기도 치열하다. 젊은 연인과 어린이의 끄라통이 유독 화려했다. 매끌롱강 야간 보트를 타고 멀찍이 나아가 끄라통을 띄웠다. 강변에 닿아 보트 조명을 내리자 반딧불이 떼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쪽배 위에서 가장 한가롭고 낭만적인 태국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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