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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내 것” 이재용 상대 소송…법원 “소송 유형 잘못 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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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는 2021년 국가에 기증됐고, '이건희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연합뉴스

인왕제색도는 2021년 국가에 기증됐고, '이건희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연합뉴스

인왕제색도는 누구 것인가. 원고는 답을 구했지만 법원은 주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상우)는 6일 서예가 손재형 선생의 유족이 법원에 ‘인왕제색도 소유권이 나에게 있다는 확인을 해달라’며 삼성 이재용 회장 및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1751년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비 내린 뒤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산수화로, 관념적 풍경이 아닌 실제 풍경을 보이는 대로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4년 국보 216호로 지정됐다.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개인 소장하며 호암미술관에 보관했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상속받았다. 2020년 10월 이건희 회장 사망 이후 2021년 4월 국가에 기증됐고, 2021년 7월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총 2만여점이 넘는 작품들 중 인왕제색도는 가장 큰 화제가 됐다.

이병철 손자 상대로 소송 낸 손재형 손자 

서예가 고 손재형 선생. 중앙포토

서예가 고 손재형 선생. 중앙포토

그러나 삼성가(家) 이전에 인왕제색도를 소유한 사람이 있었다.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이다. 그는 ‘서예’라는 단어를 만든 인물이다. 서예뿐 아니라 미술 전반에 조예가 깊어, 뛰어난 작품을 고르는 수집가로도 명망이 높았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일본에서 되가져온 인물로도 유명하다. 미술계 가장 큰 대회였던 국전 심사위원을 9번이나 지낸 뒤 각종 협회장 등을 거쳐 제 8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인왕제색도는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처음 산 미술품으로 알려져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처음 산 미술품에는 서예가 손재형씨가 수집한 작품들, 그 중 인왕제색도같은 명품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소송은 손재형 선생이 소유하고 있던 인왕제색도가 삼성가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의문을 손재형 선생의 장손자인 손원경씨가 제기하며 시작됐다. 손씨는 2021년 4월 이재용 회장 삼남매를 상대로 소유권확인소송을 냈다.

‘호암에 담보로 넘겼다’vs‘보관 맡긴 거다’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식.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미술품들을 다수 보관했다. 중앙포토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식.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미술품들을 다수 보관했다. 중앙포토

인왕제색도의 소유권을 따져보려면 손재형 선생의 가족 관계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손 선생은 8명의 자녀를 뒀다. 그 중 아들이 세 명이다. 큰아들 손용 전 중앙대 교수, 둘째 손모씨, 셋째 손홍 진도고등학교 이사장이다. 손원경씨의 주장에 따르면, 1981년 손 선생이 사망한 이후 모든 재산은 장자인 손용 전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때 인왕제색도의 소유권도 이전됐다는 게 손씨의 주장이다. 손 전 교수는 지난해 10월 사망했는데, 생전에 “홍이 아저씨가 가져가 삼성에 팔아먹은 골동품을 손원경의 명의로 되찾는 것에 일조하겠다”는 문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은 손재형 선생이 수집한 미술품을 다수 처분하던 시기에, 일정한 돈을 받고 호암미술관에 인왕제색도를 담보로 맡겼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손원경씨는 “1973년, 아버지인 손용 교수가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호암미술관에 인왕제색도를 보관해달라고 맡겼다”며 돈을 받고 담보로 제공하거나 소유권을 넘긴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중요 미술품을 국가에서 보관하겠다고 나서자 이 그림도 국가에 귀속될 것이란 우려에, 차라리 안전한 미술관에 두자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법원 “소송 방법 잘못”…각하 

손씨는 “‘겸재 인왕제색도(호암 보관)’라고 할아버지가 작성한 미술품 장부가 있고 감정도 받았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인 손용 전 교수가 1976년 11월 “부친(손재형 선생)께서 추사, 겸재 대작(大作)은 매매할 생각이 없으니, 두 작품이 어디 보관되어 있는지(호암미술관 혹은 이병철 선대 회장 자택) 확인을 요망한다”며 삼성 측에 보낸 내용증명도 있다고 주장했다. 작은아버지 두 명이서 손용 전 교수의 동의 없이 삼성에 인왕제색도를 판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번 사건의 피고 이재용 회장 측은 “이 사건은 원고 측 가족 내 완료된 상속을 다시 나누자는 상속회복청구의 성격”이라며 소 각하를 주장했다.

법원은 “대한민국, 또는 피고들을 상대로 미술품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인왕제색도의 소유권 확인을 구하는 것이 미술품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볼 수 없고, 이 소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며 소를 각하했다. 그림이 누구의 것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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