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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통일전선과 영향공작: 중국과 세계

중앙일보

입력

중국 특유의 통일전선 전술은 영향공작에 유리한 정치?사회적 환경 조성을 위한 '마법의 무기'로 마오시절부터 중요시되어 왔다.

중국 특유의 통일전선 전술은 영향공작에 유리한 정치?사회적 환경 조성을 위한 '마법의 무기'로 마오시절부터 중요시되어 왔다.

중국 언론홍보업체 ‘하이마이’와 ‘하이준’이 서울프레스·부산온라인·전라오늘 등 국내 언론 위장 사이트 38개를 통하여 친중·반미 콘텐트를 무단 유포했다는 사실이 최근 국내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 공조 성과’, ‘한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 득보다 실이 많다’ 등 무단 유포된 콘텐트는 진위의 판별이 용이한 가짜 뉴스가 아니라 일종의 의견으로, 중국에 이익이 되는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이야기 전쟁 또는 담론 경쟁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사한 사태는 중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영향공작(Influence Operation)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부르고 있다. 왜 중국은 이런 의심 내지는 비난을 받는 것일까? 영향공작은 어떤 목적에서, 어떤 조직과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가?

중국 영향공작의 목적과 비대칭적 경쟁

중국 영향공작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중국에 우호적인 대내외환경 조성이다. 영향공작은 공격과 방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즉 정치, 경제, 군사, 안보 등 모든 측면에서 당의 영도를 강화하고 대내외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영향공작의 목적이다. 광의의 영향공작에는 중국에 유리한 담론 확산, 온‧오프라인 선전, 인지전(cognitive warfare), 선거 개입, 해외 친중 그룹의 형성과 이용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에서 영향공작은 체제의 속성과도 관련된다. 중국 공산당은 단순히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중국을 영도해야 하는 존재이다. 당의 영도가 이념적인 측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당이 진리를 독점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진리가 도전을 받으면 정당성도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진리가 도전받지 않으려면 대내적으로는 통제, 대외적으로는 대외 비판 완화와 영향력 확산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내부 단속과 외부 공세는 일체화되고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신앙이 융성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의심하는 신도의 이탈을 억압하고 신도 수도 증가시켜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더구나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도광양회에서 유소작위로 이행하면서 미국‧서방과의 경쟁구조가 강화될수록 영향공작도 더욱 강화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담론, 영향력 경쟁을 해왔다. 자국에 우호적인 여론, 자국을 옹호하는 담론의 확산은 강대국간 경쟁의 한 형태인데 유학생 유치나 학술 교류, 소프트 파워 경쟁 등이 전통적인 경쟁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경쟁을 비대칭적인 환경에서 추구하고 상대방의 제도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며, 온‧오프라인 미디어도 모두 통제된다. 개인이나 기업, 지자체, NGO를 포함하는 모든 조직은 국가안보의 이름하에 당의 영도를 따라야 한다. 즉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없는, 당에 유리한 일관된 담론을 확산시키는 체제의 국가이다. 더 나아가 모든 개인, 조직을 동원한 영향공작이 가능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과 서방세계의 담론, 여론 경쟁은 비대칭적이며, 영향공작의 수행 과정에서 개방적인 민주주의 제도의 악용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위장 사이트를 활용한 특정 콘텐트 유포나 선거 개입은 개방적 인터넷,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이다.

마법의 무기, 통일전선(United Front) 전술

중국의 영향공작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영향공작에 유리한 정치‧사회적 환경이 필수적이며, 중국 특유의 통일전선 전술은 이러한 환경조성을 위한 ‘마법의 무기’로 마오 시절부터중요시되어 왔다. 통일전선 전술은 국내외 주요 사회 세력과 유력인사를 통합해 우호 세력을 확보하고 적을 내부에서부터 약화시키는 전술이다. 통일전선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마오 시대 공산당의 대륙 장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국공합작이라 할 수 있는데,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서는 통일전선 전술이 중국몽의 실현을 위해 중국에 우호적인 대외적 환경 또는 영향력 강화를 위한 핵심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국 미디어 장악, 해외거주 중국인 디아스포라 동원 체제, 온‧오프라인에서의 여론, 선전 활동 등을 통하여 우호세력을 구축한다. 그리고 일단 통일전선이 구축되면 편향적 담론의 확산뿐만 아니라 해당국의 사회적 분열과 갈등 조장, 정치적 영향력 행사, 미디어 혼탁, 기술 탈취와 같은 산업스파이 활동을 망라해 상대방에 대한 우위를 추구하게 된다.

중국공산당의 중앙통일전선공작부(中央統一戰線工作部)는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와 함께 대외적 정치공작전의 핵심 조직이자 중국만의 특수 조직이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최상위 리더쉽은 정치국 상무위원회 멤버들에서 나오며, 현재 통일전선공작부 수장은 공산당 정치국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스타이펑(石泰峰)이다. 통일전선공작부를 필두로 국가안전부, 인민해방군, 외교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전국인민대표회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국가종교사무국 등의 관련 조직이 통일전선 사업을 지원한다. 그리고 주요 미디어나 학계, 교육기관, 각종 민간교류위원회, 협회와 같은 연계‧관할 기관이나 조직이 통일전선에 복무하는데, 이러한 광범위한 연계 체제는 통일전선이 광범위한 대상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외국의 정치‧경제계 중요 인물, 미디어‧문화계 인물, NGO와 싱크탱크, 학계 및 종교계, 유학생을 망라한다.

통일전선에 우호적인 그룹의 형성을 위해서는 평화, 반전, 정의, 진보, 차별반대와 같이 쉽게 동조할 수 있는 가치를 내세우고 엘리트 포섭, 매수, 선별적 특혜 제공이 동원된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에 특혜성 개발이익 부여, 각 분야 엘리트 고액 연봉 채용, 정치인에의 합법적 기부, 대학이나 영향력 있는 연구소 지원, 문화예술단체 기부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이 모든 전술은 해외의 각종 우호협회, 교류협회, 교민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통해 수행된다. 해당 조직들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단체나 지방 우호협회 등 지방조직 차원으로 과업을 수행해 가급적 드러나지 않도록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목받는 조직은 공자학원과 중국 학생연합이다. 공자학원은 파트너 자금과 연계되어 외국대학 內에 자리를 잡고, 파트너 대학 교직원과 중국 파견 책임자가 공동 원장을 맡아 영향공작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학생연합도 중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한 당의 통제하에서 통일전선을 지원하는 위계적 조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총동원 체제는 결국 각 분야 엘리트를 친중 화해사회 제반 세력, 시민사회와의 연대, 또는 우호적 세력을 구축함으로써 각종 영향공작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궁극적으로 친중 대외정책이나 반미 프레임을 강화해 중국이 의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상대국을 내부적으로 약화시키는 전술에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의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2018. 8), 프랑스 군사전략연구소의 ‘중국 영향공작’(2021. 9), 계명대 이지용 교수의 초한전(超限戰, 2023. 4) 등 많은 연구가 중국의 통일전선 전술이 해외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적 절차를 악용하면서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요 사례와 시사점

뉴스위크지의 보도에 따르면(2020. 10. 26) 중국동향회, 중국인원조센터, 상공회의소, 중국어언론 등 미국의 약 600여개 민간단체가 중국 공산당과 정기적으로 연락하거나 중국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 매수 논란, 중국계 호주 사업가 헬렌 리우와 호주 유력 정치인 간의 스켄들 등 유력인사를 둘러싼 매수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캐나다 선거 캠페인 지원 의혹, 2021년 대만 검찰의 군 수뇌부 스파이 혐의 기소와 같이 통일전선 구축 및 영향공작과 관련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으며 그 형태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드러나거나 의혹을 받는 사례들이 주로 이민의 역사가 길고 화교 커뮤니티의 규모가 큰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구소련과의 냉전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중국과 서방과의 경제‧사회 교류가 활발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야기‧담론 경쟁, 통일전선 영향공작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영향공작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대응은 민주주의 절차를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강경한 대응은 중국계 자국민이나 기업, 조직에 대한 감시나 차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실제로도 과잉대응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국가, 조직, 개인이 통일전선 영향공작의 직‧간접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이다. 사회 엘리트나 여론 지도층은 자신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반 국민도 편향된 담론, 정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잠재적 영향공작의 위험을 경감시키는 데 중요하다.

아마도 중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국가들에 주입하고 싶어하는 담론은 모든 강대국은 나쁘기 때문에 미국도 중국만큼이나 나쁘다거나, 실리주의와 균형외교가 중요하다는 것이리라. 물론 이러한 의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며 정치적 견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가 편향적 정보나 담론, 영향공작에 노출되는 데서 기인한다면, 또는 외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개인이나 조직에서 비롯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우리는 중국의 영향공작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벌인 적이 없으니 실태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특유의 비대칭적인 담론, 영향력 행사 구조를 감안하면 우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다양한 의견에 대한 관용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를 침해하는 여하한 행위도 조사하고, 비판할 수 있을 때 우리와 중국과의 우호 관계가 굳건해질 수 있을 것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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