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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배분 공정하게" 네이버·카카오·넥슨·엔씨 등 IT노조 뭉친다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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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판교에 위치한 정보기술(IT) 기업 노동조합들이 ‘공정한 성과 배분’을 요구하며 각사 임금 협상시 여러 기업 노조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IT·게임사 노조들이 속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IT위원회는 지난 5일 ‘IT 임협(임금협약) 연대’를 중심으로 2024년 임금 교섭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임협 연대에는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엔씨소프트·웹젠·한글과컴퓨터 등 화섬노조 내 7개 지회가 참여하며, 이들은 본사 및 계열사 32곳과 임금 교섭을 시작할 예정이다. 노조의 공동 대응 움직임이 판교에 다시 노조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지난해 7월 네이버 노동조합인 '공동성명'(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이루기 위해 즐기는 투쟁- 풀파워업 프로젝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7월 네이버 노동조합인 '공동성명'(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이루기 위해 즐기는 투쟁- 풀파워업 프로젝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슨 의미야 

판교 노조가 IT업계에 ‘업종별 교섭’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 노조의 차상준 지회장은 “임협 연대 이후 장기적으로는 유럽처럼 업종별 교섭을 하는 게 목표”라며 “교섭 과정이 길어지더라도 정착하면 노사가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종별 교섭 형태로 전환해 IT 기업 노조 전체가 성과급 배분, 노동 여건 등 공통의 이슈에 대해 공동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여러 노조가 뭉치면 노조의 교섭력이 커질 수 있다.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모인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8월 77개 의료기관 사용자와 산별중앙교섭을 타결한 사례가 있다. 당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확대 노력, 직종간 업무분장 명확화 등의 공통 요구 사항을 노사가 합의했다.

그동안 판교 노조들은 회사 측과 ‘대각선 교섭’을 해왔다. 노조 지회의 상급 단체인 화섬노조가 개별 기업 교섭에 함께 참여하는 형태다. 지난 1일 엔씨소프트 노사는 사내 전환배치 시스템 개선 등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교섭 과정에 화섬노조 IT위원회 소속 다른 지회들이 함께 참여해 엔씨 노조를 지원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크루유니언 조합원들이 지난 7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아지트 앞에서 열린 ‘무책임 경영 규탄·고용 불안 해소’ 위한 카카오 공동체 1차 행동에서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뉴스1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크루유니언 조합원들이 지난 7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아지트 앞에서 열린 ‘무책임 경영 규탄·고용 불안 해소’ 위한 카카오 공동체 1차 행동에서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뉴스1

요구하는 게 뭔데 

IT위원회는 “연대하는 목표는 IT산업 내 공정한 성과 배분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매년 성과 배분을 위한 재원을 얼마나 책정할 것인지, 이를 개인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각 기업의 소수 경영진이 판단해서 결정한다”며 “제대로 된 평가 체계 없이 개인 보상이 경영진과 조직장 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보니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가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화섬노조 IT위원회를 맡고 있는 오세윤 부위원장(네이버노조 지회장)은 “성과 배분 과정에 노조 참여를 요구하거나 IT 노조 공통 이슈를 찾아 무게감을 키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인사는 “판교 노조가 과거 포괄임금제 폐지에 성공했듯,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업종별 최저임금과 개발자 등 직종별 직무급의 하한선을 정하거나, 성과급 분배의 최저 비율을 정하는 등 바닥을 다지는 방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망은 어때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홈페이지 캡쳐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홈페이지 캡쳐

IT 산업 특성상 업종별 교섭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선 기업별 교섭이 대세라 산업별·업종별 교섭은 쉽지 않다. 같은 업종이라도 기업별, 계열사별로 상황이 다르고 원·하청 상황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IT업계는 이직이 잦고 직원들의 기업 소속감이 낮은 편이라 기업보단 업종 단위의 합의가 노조 입장에선 필요하겠지만, IT업계에는 사용자를 대표할 단체가 따로 없어 업종별 교섭이 자리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T 업계는 이번 임협 연대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연대가 성과를 내면 노조가 없는 IT기업 직원들도 노조 조직에 의지를 보일 수 있기 때문. 익명을 요청한 IT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는 “엔씨소프트 노조는 출범 7개월 만에 단체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다”면서 “노조의 임협 연대 선언으로 당장 달라질 건 없지만, 향후 판교에 다시 노조 바람이 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